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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이승철> 규제의 역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자동차는 시속 3km내로만 달려야 한다.’ 지금 보면 황당한 규제같지만, 1865년 당시 영국은 보행자와 마차산업을 보호한다는 선한 의도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를 제정했다. 운전수,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반드시 탑승하고,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55m 앞에 있는 보행자와 마차에게 자동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야 했다. 최고속도는 시내에서 시속 3.2km, 교외에서 6.4km로 제한됐다. 영국은 가장 먼저 실용화된 자동차를 개발했지만, 이 황당한 규제에 발목 잡혀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킬 기회를 잃었다. 만약 붉은 깃발 법이 없었다면 영국은 아마 BMW의 독일, 도요타의 일본, GM의 미국과 같은 굴지의 자동차 대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규제는 선한 의도로 출발했더라도 선한 결과를 담보하진 않는다. 오히려 의도한 정책효과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그럼에도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규제가 오히려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규제의 역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제가 그렇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은 연평균 8% 상승해 경제성장률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이 해고되고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다.

경제학 기본 이론에 비춰봐도 당연한 결과다. 임금이 상승하면 채용 수요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인상하려 하자 미국 의회는 90만명이 혜택을 보지만 50만명은 아예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논란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탁비누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업계 1위 중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년만에 41%에서 60%로 증가했다. 6.5%의 시장점유율을 가졌던 대기업이 강제로 퇴출되면서 1위 중소기업의 독과점만 심화된 것이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대형마트 규제도 엉뚱한 피해자만 낳고 있다. 대형마트 매출 감소로 납품 농어민과 중소업체들에게 연간 1조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규제 근시주의’를 들 수 있다. 규제를 도입할 때 한 가지 선한 의도만 생각하다보니 주변의 수많은 나쁜 결과를 무시하게 된다. 때문에 황당한 규제가 나오기도 한다.

규제를 할 때는 그로 인한 모든 편익과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설사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지, 국부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면밀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는 국민을 위해 울리는 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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