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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자연·사람·세상에 대한 따뜻한 성찰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문화인류학적 세심함·속깊은 시선

그리스의 끝 마니…古都 마니에서 만난 古今의 희로애락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가 1904년에 쓴 ‘여행에 대하여’는 여행의 고귀한 가치가 잘 드러나있다. 여행이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자신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며,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 노력하는 행위’다. 그래서 여행은 우연한 마주침과, 세상이 숨겨놓은 본질로의 헌신적인 지향이 두 바퀴를 이뤄 밀어가는 수레라는 것이다.

그에게 여행의 체험이란 성당이나 오래된 궁전이 아니라 정원 ‘자르디노 디 보볼리’에 있는 조그만 금붕어 연못이며, 박물관 속의 명화가 아니라 여관 여주인과 부엌에서 나눴던 잡담이며, 오페라 공연이 아니라 수다스러운 재단사의 즉석 가창이고, 여관딸에게 반한 시골총각과의 ‘주먹다짐’이었다.

로버트 고든은 “여행은 자기계몽과 해방에 이르기 위한 순례이며 자기성찰, 타자에 대한 이해”라고 했다. 이제 여행 속 보석 같은 지혜를 찾아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헤르만 헤세는 20대에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이후 평생에 걸쳐 세계를 다녔다. 최근 출간된 ‘헤세의 여행’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관한 에세이와 여행 기록을 엮은 것이다. 자연의 황홀경에 대한 찬탄, 희로애락이 그려내는 삶의 다양한 표정과 무늬, 여행자가 현지의 자연 및 사람, 삶과 세상에 합일되는 정서적인 경지가 드러나있다. 다분히 성찰적이다.

그는 자기 손에서 시든 아네모네와 거리의 가난한 소녀들이 파는 싱싱한 아네모네를 통해 봄날의 빛나는 피렌체와 삶의 한 비경을 그려내고, 스위스ㆍ이탈리아 경계이자 알프스의 관문인 코모에 가서는 삶의 무상함을 드러내는 음침한 해골 피라미드와 그 앞에 놓인 화려하고 생동하는 아이들의 꽃장식을 마주하며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렬하고 황홀한 느낌을 전한다.

그로부터 100년뒤 미국 인류학자 로버트 고든 교수(버먼트 대학교)의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미국어와 독일어, 인류학자와 소설가 그 차이만큼이나 다른 언어와 표현을 쓰지만, 핵심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교육, 자아 발견 촉진, 특수한 재미, 현실 도피를 위해 여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한 여행이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지위 과시용 새로운 상징의 수집’이 아니라 “자기 계몽과 해방에 이르기 위한 순례”이며 자기 성찰이고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그의 지론이 담겨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며, 현지인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문화인류학적인 세심함과 사려깊음이 돋보인다. 자기 성찰의 의례(儀禮)로서 여행을 다룰 뿐 아니라 성, 인종, 계급, 국가간 경제적ㆍ문화적 격차를 재생산하고 확인하는 권력불평등 현상으로서 사회적 차원의 여행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의 절반은 여행준비때의 고려사항과 짐싸기, 현지인과 수다떨기, 건강과 안전문제, 좋은 여행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

최근 출간된 패트릭 리 퍼머(1915-2011)의 ‘그리스의 끝 마니’도 출중한 여행기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장 풍부할 뿐더러 유머와 활력, 정보, 문학적 재기로 가득찼다. 그럼 마니는 어디인가. 저자는 북쪽인 스파르타로부터 그리스의 최남단 곶인 마니로 들어가는 여정을 택해 입성을 눈앞에 두고 한 식당에 가서 편지를 쓰는 데 그것을 본 식당 여주인이 한마디한다. “지금 마니라는 곳, 돌멩이만 있는 무지 더운 동네라고 쓰세요”라고. 그러나 패트릭 리 퍼머는 돌멩이만 있는 오래된 도시에서 온갖 신화와 현대사와 동시대인들의 삶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끌어올리고 황홀하거나 쓸쓸하거나 자연의 다양한 표정들을 잡아낸다.

패트릭 리 퍼머는 제 2차 대전때 게릴라활동을 벌였던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말솜씨와 유머 감각, 명석한 두뇌, 잘생긴 외모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리스의 끝 마니’는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펼쳐내는 이야기가 유려해 지루할 틈 없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최근 출간된 여행기 중에선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1864~1916)의 ‘19세기 지중해의 풍경’도 볼만하다. 종군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희곡작가인 저자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모로코 탕헤르, 이집트 카이로, 그리스 아테네,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 걸쳐 이르는 여정을 담아내고 있으며, 미국인 작가의 눈에 비친 당시 국제적 역학관계와 민중들의 삶이 잘 나타난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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