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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널사’ B급을 B급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마력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MBC 수목극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B급 코드가 많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속에 자극적인 설정들이 꽤 들어가 있다. 그동안 많은 ‘로코’물에서 써먹던 생면부지 남녀의 ‘원나잇’을 비롯해 혼전임신, 계약결혼, 이혼서약서 등 막장적 장치가 이어진다.

1~2회를 볼 때만 해도 앞으로의 상황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라 자극적 설정을 보여주어도 힘을 발휘할 것 같지 않았다. 1회 첫 장면에서 장인화학 CEO 장혁(이건 역)이 허세 쩌는 샴푸 CF 모델의 모습을 보일 때는 “이건 뭐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갈수록 장혁과 장나라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기대가 됐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단순하고 뻔할 것 같아 기대감이 낮았지만, 장혁의 과장 코믹연기가 먹혀들면서 재미있어졌다. 여기에 계산이 빠르지 못하고 느리면서도 진정성이 있는 우리의 ‘극강 동안 캔디’ 장나라의 눈물과 웃음 연기도 큰 힘을 발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외설과 막장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녹여내는 용광로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19금’ 등 야하고 딱딱한 설정도 이들의 연기로 제련을 하면 부드러운 ‘15금‘이 됐다.

떡방아신이나 태교교실신도 야한 설정이다. 특히 장혁이 장나라(김미영)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뺀 채 허공에 손을 빙빙 돌리다 제대로 마사지하라는 강사의 독촉에 장나라의 가슴에 손을 대는 순간 장나라나 장혁 둘 다 기겁해버리는 장면은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장혁은 아무리 진지한 상황도 ‘음하하하하~’ 웃음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바꿔버린다. 웃기기도 하지만 중독성도 있다.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태교부부교실에 뒤늦게 나타나면서 이 웃음 한 방과 “군대 있을때 제 주특기가 오바로쿠입니다”라고 말하며 신들린 바느질 솜씨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장모(송옥숙)의 부름에 달려나가 장모 친구 결혼식 뒷풀이에서 광란의 댄스와 랩을 선보인 장면들은 허를 찌르는 웃음을 선사했다.

로맨틱 코미디는 스토리 못지 않고 누가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장혁과 장나라는 이 점에서 만점이다. 각자가 ‘로코’의 강점을 가지고 있고 두 사람이 빚는 ‘케미‘ 또한 막강한 ‘달팽이 커플’을 제조해냈다.

9대독자 허세 재벌남 이건을 맡은 장혁은 웃기고, 장나라는 웃기지 않아도 이들의 코믹궁합이 빛을 발한다. 시청자들은 “장혁 웃음소리 웃겨 죽겠네”라며 도핑 테스트를 해야 할 정도로 미친 연기라고 한다.

‘우는 장나라’는 다른 여배우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장나라는 외로워도 안우는 보통 캔디형 신데렐라와 달리 힘들면 운다. 여기서 진심이 오롯이 전달된다.

장혁이 출산뒤 자동이혼이라며 장나라에게 10억원을 제시하면 보통 캔디들은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며 화를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나라는 “나는 당신을 몰랐지만 나에게 잘 해주는 걸 보고 아기 아빠로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10억은 받지 않겠다고 한다.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것을 못참고, 자신감이 없으며, 자책하는 장나라 캐릭터는 시청자의 동정심을 자아낸다. 서글픈 눈물을 흘리고 또 웃을 줄 아는 장나라를 이기는 남자는 욕 먹을 수밖에 없다.

로맨틱 코미디는 통상 제2의 여성을 악녀로 만들어 갈등을 최고조로 올린다. 제1의 여성은 핍박받는다. 여자주인공은 집안끼리 맺어진 남자의 애인으로부터 당하고, 시어머니가 될 사람으로부터도 돈봉투를 제시받으며 당근과 채찍 세례를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는 이두가지가 없다. 이런 것 없이도 드라마가 가능한 것은 장나라의 캐릭터때문이다. 장나라라는 존재는 굳이 장혁의 애인 세라(왕지원)를 악녀로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체내에서 ‘로코‘의 극성과 감성을 지니고 있다.

비정규직에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김미영을 맡은 장나라는 세라의 친구가 일회용 커피 잔을 버려달라는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준다. 누구의 말도 들어주는 ‘포스트 잇’ 걸이다. 하지만 그런 장나라를 장혁이 ‘본드걸’로 만들어준다. 대단한 방법과 수법을 써가면서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신나게 웃다보면 그렇게 되어있는 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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