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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얼굴 백반증도 장애, 국가가 지원해야”
[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피부에 흰색 반점이 생기는 질환인 ‘백반증’이 얼굴에 발병할 경우 장애로 인정, 국가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상 장애 기준이 복지부가 고시한 ‘장애등급판정기준’보다 우위에 있다는 판단이다.

29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원 등에 따르면 1991년 충남 보령시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한모(71)씨는 얼굴에 하얀 반점이 생겨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진단은 백반증. 백반증은 후천적으로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세포가 파괴되어 피부가 하얀 색으로 변하는 피부 질환으로 자외선에 의해 악화될 수 있다.

한씨는 발병 후에도 일을 계속했지만 병이 더 심해졌다. 야외활동에 따라 자외선을 쬐게 되면 악화되는 백반증의 특성 때문이다. 결국 한씨는 지난 2001년, 19년간 일한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상한 사람을 보듯 보는 시선때문에 변변한 일자리도 찾기 힘들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한씨는 민박집 단칸방에 세들어 살며 청소일을 도와주며 생계를 이어갔다. 2006년 보령시에서 안면부 3급 장애인으로 등록돼 국가지원을 받으면서 약간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장애인 심사절차가 강화된 후 한씨의 장애인 등록이 취소됐다.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판정기준’ 고시에 따른 안면부 장애 증상에 백반증이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보령시장을 상대로 장애등급을 다시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냈다.

최근 백반증 환자가 장애인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전혀 없어 백반증 환우 모임에서조차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지만, 한씨 측은 포기하지 않고 법리와 사례를 수집해 재판에 임했다.

결국 지난 2월 1심 법원은 한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령시가 한씨의 장애등급을 번복한 결정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보령시는 바로 항소했지만 2심을 맡은 대전고법 행정1부도 최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씨는 얼굴에 나타난 광범위한 백반증으로 오랫동안 일상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안면장애인’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밝혔다.

재판부는 “백반증이 안면장애에 해당하는지를 판정하려면 복지부가 고시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아닌 장애 관련 법령의 해석에 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을 보면 안면장애인은 얼굴의 변형이나 기형으로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며 “백반증도 안면부위의 변형으로 볼 수 있고, ‘장애등급판정기준’ 상의 색소침착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 보령시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확정됐다.

소송을 맡았던 법률구조공단 소속 박판근 변호사는 “행정기관에서 만든 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에 경직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이 다른 질병 판정에도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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