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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백남준은 여전히 살아있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1984년 1월 1일(뉴욕 현지시간) 정오, 저녁 6시(파리), 그리고 2일 새벽 2시(한국).

하모나이저(harmonizer) 전자음을 입힌 붉은 입술 그래픽이 움직이며 “굿모닝 미스터 오웰”, “봉주르 무슈 오웰”이라고 인삿말을 건네는 장면이 뉴욕, 파리, 독일, 한국의 TV 브라운관을 통해 일제히 방영된다. 1949년 소설 ‘1984’를 발표하며 ‘빅브라더’에 의한 통제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렸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을 향해 백남준(1932~2006)은 “당신은 절반만 옳았다”라고 반박하며 정확히 1984년 1월 기념비적인 미디어 퍼포먼스를 펼친다.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샬롯 무어만 등 당대 세계적인 전위 예술가들과 로리 앤더슨, 오잉고 보잉고, 톰슨 트윈스 등의 대중 가수들이 각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를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로 보여줬던 1시간짜리 유쾌한 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올해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방영된지 30년이 됐다. 
사진설명 : 엑소네모, 수퍼내추럴, 2009~2014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와 백남준문화재단(이사장 황병기)은 백남준 탄생일(7월 20일)에 즈음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념하고 현재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특별전 및 아카이브전 등을 잇달아 열었다.

이번 전시들은 동ㆍ서양의 예술, 난해한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를 융합하며 미디어아트라는 획기적인 장르를 개척했던 백남준을 재조명하고, 그의 뒤를 잇는 젊은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21세기 백남준의 메시지는 유효함을 증명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다만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에 대한 체계적인 기념 사업이 여전히 한국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불분명한 목적의 전시가 난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백남준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백남준문화재단]

▶백남준의 후예들=리서치ㆍ통계 전문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의 2013년 1월 기준 통계에 따르면 페이스북(11억8천4백만명), 큐존(6억3천2백만명) 등 전세계 SNS 이용자는 30억명에 달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사생활을 자발적으로 노출하고 지구촌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소셜미디어 혁명의 시대는 30년전 백남준이 예언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21세기 위성보다 더 강력해진 네트워크 기술은 소통의 자유 확대와 함께 미디어에 의한 감시 강화라는 양면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특별전에서는 세계 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16팀이 백남준이 펼쳤던 긍정의 매스미디어 쇼를 계승하면서도 미디어의 독재와 통제를 비판하는 날선 시각을 함께 견지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일본의 미디어아티스트 듀오 엑소네모는 ‘슈퍼내추럴(Supernatural)’라는 이름의 작품에서 공간을 뛰어넘는 미디어 실험을 펼쳐보였다. 작가의 일본 자택과 한국의 전시장에 각각 숟가락을 설치해 한 화면 속에 양분해 마치 하나의 숟가락처럼 보이도록 했다. ‘유리겔라의 초능력’으로 상징되는 이 숟가락을 통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초능력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굿모닝 미스터오웰 2014’ 전시전경. 백남준의 1984년 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등장했던 주요 아티스트들 위주로 화면을 재구성했다.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독일의 뵤른 멜후스는 매스미디어의 본질적인 속성을 ‘살인적인 폭풍’이라는 타이틀로 7분짜리 비디오에 담았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엇에 관한 것이냐고요? 우리도 모릅니다(There is unknown situation. About what? We don’t know)”라는 전자 사운드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면서 뉴스미디어가 대중의 심리를 조작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리즈 매직 레이저(미국), 송상희(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백남준의 후예’를 자청하며 그를 오마주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송상희, 그날 새벽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2014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백남준문화재단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백남준의 독일 라인란트(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 교수 역임) 시절 작품 활동과 당시 행적에 초점을 맞춰 ‘라인란트의 백남준-나의 예술적 고향’이라는 타이틀로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를 열었다.

백남준문화재단은 황병기, 이어령 등 백남준의 옛 지인들이 모여 ‘재능기부’ 형식으로 백남준을 기린다고 해서 이른바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로 불린다.

이 전시에서는 독일의 만화 전기작가 빌리 블뢰스가 2006년 백남준의 일대기를 일러스트로 그린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 1967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 함께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펼쳤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의 사진들을 영상으로 조합한 작품을 암막 커튼 뒤 어두운 공간에서 ‘19금’이라는 타이틀로 보여주고 있다. 전라의 무어만은 남성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를 첼로처럼 껴안고 연주하는 이 성적 퍼포먼스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미술계에서는 백남준아트센터와 백남준문화재단이 협업을 통해 백남준을 제대로 기리는 작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자녀가 없었던 백남준은 생전에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법적 승계자로 일본인인 큰 조카 하쿠다 켄 백을 지목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백남준 작품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인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경은 백남준문화재단 기획실장(갤러리아트링크 대표)은 “백남준의 실질적인 상속자로 여겨지는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디렉터 하쿠다 켄이 공식적으로 디클레어(Declair)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백남준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재단(Foundation)을 설립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면서 기부로만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이번 아카이브 전시의 한계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에 대한 학술과 연구, 젊은 작가들에 대한 발굴과 지원사업을 하는 아트센터와 추모사업 위주의 문화재단의 역할이 다르다”고 구분하면서도 “향후 백남준에 관련한 업무에 대해서는 충분히 협조하고 지원할 의향이 있다”며 협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11월 16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라인란트의 백남준’은 9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각각 계속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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