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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조원 中古시장, 가치소비의 중심에 서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젊음의 분출구’ 홍대 놀이터에선 매주 토요일 ‘플리마켓’(벼룩시장)이 선다. 플리마켓은 홍대를 넘어 최근엔 강남 1번지 서초는 물론, 수도권 인근으로까지 무한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중고품은 플리마켓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최대 상품이다. 신제품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명품을 소비하던 부유층에서도 ‘중고’는 이제 ‘트렌디’(trendy)한 최신 소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남이 사용하던 물건을 사서 쓰는 이른바 ‘중고 소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중고 소비’는 ‘합리적인 가치 소비’로 포장되고 있고, 심지어 경기불황에 맞물려 ‘신(新) 재테크’ 등 ‘세련된 소비’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저가형 소비’로 덩치를 키운 중고시장은 이젠 헌 것을 새 것처럼 만들어 파는 리폼으로, 그리고 중고명품 거래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한 한정판 거래 등 이른바 ‘나만을 위한 사치’의 주요 경로로까지 그 정의를 확대하고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

이시환 까페24 마케팅전략연구소 소장은 이와관련 “실용과 가치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면서 ‘중고’물품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다양한 중고 상품군들이 소비아이템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특히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이 일상화 되면서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전문 쇼핑몰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건길 11번가 중고담당 MD도 “중고가 ‘남이 쓰던 싼 제품’에서 ‘저렴하면서 멀쩡한 상품’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낡은 제품은 새 제품 혹은 새 것과 다름없는 제품으로, ‘오래된 제품’은 세월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치있는 제품으로 재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심지어 아예 처음 물건을 살 때부터 중고로 되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제품 구매 후 되팔 경우를 생각해 박스 포장이나 더스트 백 등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최근엔 ‘중고’가 리폼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재 탄생하는 일도 허다하다. 의류와 가방에 한정됐던 리폼은 기타 등 그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모든 제품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네이버 ‘중고나라’ 화면

직장인 홍모씨는 “최근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시중에서 30만원대하는 기타를 절반가격에도 못미치는 7만원에 구입했다”며 “이번에 구입한 기타도 그냥 쓰던 것이 아니라, 세고비아 클래식 기타를 검정컬러에 디테일한 금속장식까지 클래식 기타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리폼기타였다”고 말했다.

중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등 시대적인 트렌드에 맞춰 운영되는 중고 전문 쇼핑몰도 늘고 있다. 가치소비, 실용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다. 가령 패션잡화 전문몰 리블랭크는 옥외 텐트, 테니스 코트 등에 쓰이는 방수천 타폴린 원단을 활용해 가방, 지갑 등을 제작판매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경제력이 높지 않지만 개성있는 디자인이나 스타일의 상품에 대한 욕구가 높은 20대 남녀 고객이 대부분이다. 채수경 리블랭크 대표는 “디자인이 우수하면 재활용 원단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것이 고객들의 특징이다”고 밝혔다.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은 중고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번가에 따르면 중고 명품 매출은 지난해 185% 상승했으며, 올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대비 200% 가량 증가했다.

한 온라인 명품거래사이트 관계자는 “새 것을 사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품보다는 명품이 가진 가치를 보고 사는 이들이 주고객”이라며 “명품은 새 제품보다 약간 사용감이 있으면 질과 색감이 더 좋아 굳이 새 제품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고객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는 단지 남의 것을 사서 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희소성이 높아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한정판’은 ‘저렴하다’는 인식을 뒤엎는다.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시장에서 오히려 기존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픈마켓 한 관계자는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한정판이나 희귀아이템은 중고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돈을 더 지불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며 “중고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자동차 중고 매매시장

최근 매진행렬을 기록했던 맥도날드 어린이용 메뉴 해피밀에 끼워 판매되던 슈퍼마리오 장난감 세트는 현재 중고시장에서 3만5000원에서 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고, 올해 4월 출시됐던 뉴발란스의 ‘999 체리블라썸’ 운동화는 매진과 동시에 온라인 중고사이트 등에서 공식 판매 가격보다 5~6만원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 LP판 등 약 5만개의 중고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음반 전문 쇼핑몰 ‘뮤직메이트(www.musicmate.co.kr)’는 특정 음악이나 가수 마니아층에게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록 중고지만 그 희소성 탓에 가격대는 높은 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중고 LP판은 발매 당시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그 소장가치가 높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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