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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구, 생각이 바뀐다…‘에코-프레스티지’의 미학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한때 ‘가구’(家具)는 곧 ‘가보’(家寶)였다. 먼 옛날 우리 선조는 자신의 손때가 곱게 내려앉은 문갑이며 장롱, 경대 같은 가구를 장성한 자식에게 물려주며 비로소 당대(當代)의 과업(課業)을 흐뭇하게 마쳤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가구는 생활용품이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웠다. 전나무와 오동나무, 단풍나무, 호두나무, 소나무 등 일반적인 목재서부터 자단(紫檀)이나 흑단(黑檀) 같은 고급 목재까지, 다양한 재료 중 최고의 것만을 골라 깎고 다듬고 옻칠까지 해낸 전통가구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났다. 찬란한 오색 빛 자개문양을 칠흑같은 바탕에 곱게 새긴 전통가구는 그렇게 자손들의 번창을 바라는 가문의 염원을 담고 대를 이어 물려졌다.

에몬스의 ‘화이트젠’(White Zen) 침실시리즈

‘가구의 대물림’이라는 개념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경제성장과 현대화가 급격히 진행된 1980년대부터다. 대중적인 주택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한 ‘아파트’라는 서구식 생활공간에 묵직한 분위기의 전통가구는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새하얀 페인트와 시트지, 번쩍이는 금ㆍ은빛 장식을 입은 현대식 가구가 안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합판으로 만든 중국제 수입가구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1990년대, 사람들은 더이상 가구를 자손에게 물려주거나 이사를 할 때마다 행여 상처라도 날까 소중하게 천으로 동여매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았다. 한 가족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갈 때마다 낡은 가구들은 생활의 흔적처럼 덩그러니 공터에 남겨졌다.

‘에디스’(Edith) 소파

■가구, 다시 가보가 되다

그러나 21세기, 가구는 다시 가보가 되고 있다. 휴식과 치유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가치가 명품이라는 단어와 결합, 새로운 소비트랜드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소비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행과 하나의 틀로 찍어낸 듯 개성 없는 제품에 지친 소비자들은 다시금 가구를 통해 삶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1979년 ‘목화가구’로 출발한 토종 가구업체 ‘에몬스’의 ‘에코-프레스티지’(Eco-Prestige) 가구가 대표적인 예시다. 에몬스는 지난달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친환경 명품’을 뜻하는 에코 프레스티지를 하반기 자사의 브랜드 콘셉트로 제시했다.

김경수 에몬스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인이 언제 가구를 구매하는지, 어떤 공간에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연구했다”며 “그 결과 대부분이 혼수, 입주, 이사와 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구 구매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구 소비의 형태가 일회성 소비에서 명품ㆍ특성화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회용이나 조립식 가구 보다는 직접 오랜 시간 사용하며 제품을 길들이고 세월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친환경 고급 가구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휴스턴’(Houston) 거실장

실제 에몬스가 출시한 에코-프레스티지 제품들은 철저한 친환경ㆍ명품정책 아래 생산된다.

가구의 소재로 ‘포르말린’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저온냉장 천연무늬목을 사용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무와 나무를 결합하는 접착제 역시 포름알데히트가 방출되지 않는 친환경 수성타입을 사용한다. 가구 내부 마감에 천연옥과 황토, 참숯 등 자연 재료를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가구는 거실이나 주방, 침실 등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공간에서 사용되는 제품인 만큼, 친환경성을 살리는 것이 ‘명품가구’로 가는 지름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인위적인 가공과정을 최대한으로 줄인 천연대리석과 호두나무 낙엽송 원목을 사용하는 등 자재 선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에몬스 관계자는 “쉽게 사고, 바꾸고, 버리는 가구가 아니라 오래도록 소유하며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가구, 대물림할 수 있을 만큼 높은 품질을 지닌 가구를 만들고자 했다”며 “가구시장의 위축에도 올해 상반기 가정용 가구 매출이 전년도보다 30% 이상 느는 등 소비자들의 호응도 좋다”고 말했다.


‘휴스턴’(Houston) 식탁

■이탈리아 천연 소가죽에 전통 옻칠까지 가구의 진화

이처럼 친환경 명품가구가 인기를 끌자 가구 생산방식과 자재 조달방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고급 가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소재를 직수입하는 업체에서부터 철ㆍ유리 등 현대적인 소재에 전통 가구제작 기법을 도입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국내 중소 가구업체 ‘자코모’는 직수입 방식으로 자재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최근 프라다, 아르마니, 토리버치 등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에 가죽을 공급하는 가죽제조업체 ‘크레스트레더’와 천연가죽 독점 공급 협약을 맺었기 때문.

자코모가 사용하는 모든 가죽과 자재는 스위스의 SGS, FITI, KCL 등 국가공인인증기관에서 친환경인증을 받은 것으로, 아이가 있는 집에서도 걱정없이 사용할 수 있다.

1998년 바로크그룹에서 독립한 ‘바로크C&F’는 전통 가구제작기법을 통해 친환경 명품가구를 개발한 경우다. 바로크C&F는 지난 2010년 ‘옻칠예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금속 및 유리에 옻칠을 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특허를 취득했다.

바로크C&F는 현재 ‘친환경적 생활문화공간을 창조한다’는 경영비전 아래 친환경명품가구 브랜드 ‘보네르(Bonheur)’를 론칭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한때 스웨덴 대형 가구 업체 이케아를 중심으로 저렴한 조립식 가구가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가구 시장의 무게추가 다시 고급 명품가구로 기울고 있다”며 “친환경ㆍ고급자재 조달과 새로운 가공기술 개발이 향후 업계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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