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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도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씁쓸한 존재인식…이승우 신작 ‘신중한 사람’ 의 음울한 發話
반복 · 역설 등 리듬감 있는 독특한 문장…누구나 느끼는 현실 예리하게 파고들어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문학과 지성사
“그러나 그녀는 당신을 보지 못했고 당신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당신의 아내는 스위치를 올려 형광등을 밝혔다. 당신이 칩거하고 있던 방은 비어 있었다.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당신이 그 방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다. 〔…〕 이 사람이, 언제 어떻게 나갔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힌 채 무슨 일인가를 했다는 걸 당신 아내는 물론 당신 자신도 알지 못했다.”(‘하지 않은 일’)

“그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이미, 어디’). ‘어디에도 없는’ 그는 “난 벌써부터 여기 없다”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냐고, 난여기 없는 사람이라니까 왜 있지도 않는 사람한테 왜 이러냐고 항변한다(‘어디에도 없는’).

마침내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된 이들은 누구인가? 오십이 다 되도록 대학 강사를 전전하다가 빚만 잔뜩 졌으며 애들 학원비를 위해 아내를 생계전선에 보냈고 지방 시에서 하는 일주일짜리 취업 강좌를 하게 된 남자(‘리모콘이 필요해’)거나 유능한 회사원으로 노후용 예쁜 전원주택까지 지었으나 마지막 딸의 유학자금을 위해 해외주재원으로 나갔다 돌아온 길에 집이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갔음을 알게 된 은퇴 직전의 직장인(‘신중한 사람’)이다. 제법 규모가 큰 의류회사의 직원이었고, 회사와 사회로부터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기 소유의 집 및 약간의 부동산과 주식도 있는, 노모와 아내와 아들을 둔 중년의 사내이나 어느날 그 모든 것이 끔찍하게 여겨진 사람(‘이미, 어디’)이다.

만일 비슷한 시기 나란히 출간된 성석제의 장편 ‘투명인간’과 함께 이승우의 단편소설집 ‘신중한 사람’(문학과지성)을 함께 읽어본 독자라면, 공교로움을 넘어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문단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오십대 중반의 두 중견작가 60년생 성석제와 59년생 이승우가 서로 다른 눈과 말과 길과 사유로 다다른 곳이 묘하도록 겹치거나 닮아있다. 그 곳엔 서로 다른 이유로 결국은 이미 없는 사람이 된,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남자들이 서 있다. 이승우의 어법대로라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고, 성석제의 표현을 빌자면 ‘투명인간’이다. 비록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자신이 아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했던 지극히 평범했던 한 남자의 꿈을 세상이 착취하고 파멸시킨 과정의 결과이고,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은 발화(發話)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남자가 세상으로부터 침잠하고 스스로를 골방으로 유폐시킨 결말이지만, 둘 모두 어떻든 존재의 위기에 처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존재 위기와 비극적 자기 인식이라 할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사람’ 이 된 베이비부머세대의 존재위기에 대해 50대 중반 이승우 작가가 신작 ‘신중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에는 너무나 신중해서 자기가 소유한 집 다락방에 월세를 내고 얹혀살게 된 이의 이야기를 그린표제작‘신중한 사람’을 비롯해 지난 2010년과 2013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 8편이 실렸다. ‘리모컨이 필요해’는 우연히 흘러든 여관방의 TV가 매일 새벽 잠을 깨우나 리모콘이 없어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한 남자의 딱한 사정을 담았다. ‘이미, 어디’와 ‘어디에도 없는’은과거를 정리하고 떠나려하지만 필요한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유예돼 갈 곳 잃고 부유하는 남자들의 사연이다. ‘딥 오리진’과 ‘하지 않은 일’은 인터넷으로 퍼지는 소문이 소재인데,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면이 서술됐다는 점에서 짝패를 이룬다. ‘오래된 편지’는 죽은 노교수의 생전 애재자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스승의 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하고 겪는 내적 갈등을 다뤘다. ‘칼’은 평생 아버지가 무서워 부적처럼 칼을 품고 있어야 하는 남자와 그런 아들이 두려운 노인의 이야기다. 

이들 주인공들이 겪는 존재 위기의 바탕에는 ‘상호주관성’의 위기가 있다. 즉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상황을 상대가 인지하고 있는지, 즉 타자의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연쇄적이고 상호적인 인지 작용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회의가 깔려 있다. 근착 신간인 한국계 재미 정치학 교수인 마이클 S.최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게임이론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 지식’(허석재 옮김, 후마니타스)에서는 이를 ‘공유 지식’이라고 하는데, ‘공유 지식’은 소통과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다. ‘공유 지식’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조정하는데, 이승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진 타인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발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대부분은 소통이나 조정에 실패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상대의 의도와 진실을 파악하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그것이 ‘신중한 사람’의 ‘신중함’이되,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만다. 이는 반복되고 과잉되는 진술로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꺼려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공식이 그래서 성립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가 혹시 만들어낼지도 모를 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끔찍해하기 때문이다”(‘신중한 사람’)와 같은 문장이다.

인물들은 최종적으로 시공간 모두에서 ‘좌표’를 잃고 갈 길 잃고 부유하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존재의 위기가 어디로부터 연원하는지는 소설이 직접 지시하지 않고 있지만, 독자들은 쉽게 베이비부머 세대가 마주한 우리 사회의 환경과 변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것을 감당해내야 하는 세대의 내면에 대한 초상이다. 반복과 점층, 역설, 대조, 대구 등을 자유자재로 섞어낸 문장들이 가지는 독특한 리듬감과,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진술,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한번 손에 들면 쉽게 놓치 못하게 하는 책이다. 홍상수 영화의 비극 버전을 보는 듯하고 단편을 읽는 쾌감으로 충만한 이 작품들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왜 이승우를 좋아하는지, 그가 왜 유럽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거론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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