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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법칙’ 중간점검…다큐냐 예능이냐 “이젠 생존 아닌 생활”

[헤럴드 경제=고승희 기자] 대한민국 예능 콘텐츠 사상 최초로 100% 사전제작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안고 태어난 ‘법칙’ 시리즈는 SBS가 자랑할 만한 자체 예능 브랜드다. 교양국과 예능국의 합작품인 ‘정글의 법칙’의 노하우가 이동한 ‘도시의 법칙 in 뉴욕’은 뉴욕 한복판에 떨어진 연예인들의 무일푼 생활기를 다룬다. 총 10회분으로 제작, 현재 방송 5주차를 맞고 있다. 시청률은 3~4%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마천루가 끝없이 이어지는 뉴욕 맨해튼에선 조금 비껴난 브루클린을 생존지로 정하고, 연예인들의 일자리 찾기를 통한 뉴욕 적응기를 보여줬던 ‘도시의 법칙’은 5회차를 기점으로 맨해튼에 입성한다. 꿈의 도시로 향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프로그램도 분위기 전환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2막인 셈이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이지원 PD와의 인터뷰,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의 평가를 재구성해 반환점에 다다른 ‘도시의 법칙’의 현재를 진단해봤다.

고승희 기자(이하 고)=‘도시의 법칙’은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기획의도를 통해 저마다의 의미를 가져가려 한다. ‘무한도전’이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풍자의 역할을 해주며 자기들만의 명분을 찾는 것은 흔하다. 그런데 ‘도시의 법칙’은 도시 속 생활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 소통의 어려움과 이민자의 삶을 끌어왔다. 예능답지 않은 거창한 의미를 품었다. 과거의 예능이 다루지 않았던 시각을 담았다는 점에서 참신한 접근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하 정)= 기획의도가 좋다. 정글로 향한 예능에는 판타지가 있지만, 도시에는 판타지가 없다. 도시로 들어오니 그 안의 리얼리티가 보이며,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지원 PD(이하 이)=‘정글의 법칙’을 연출할 당시부터 생각했던 기획이다. ‘정글’의 정의를 문자 그대로 아마존 밀림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도시는 ‘콘크리트 정글’이지 않나, ‘정글’의 함의를 확장하면 언젠가 김병만과 함께 도시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단계에선 뉴욕으로 장소를 선정한 뒤, 섭외를 진행했고, 답사를 다녀왔다. 출연자들의 성향과 도시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사전 시뮬레이션을 가졌다. 특정 인물이기 때문에 뉴욕에서 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일이 있다. 답사 과정은 도시와 출연자, 이 두 가지의 접합점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안에서 뉴욕이라는 도시가 보여준 의미는 애초의 기획단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정=하지만 대중적인 공감대는 떨어진다. 사람들이 도시로 여행을 가는 이유는 그 도시의 문화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도시의 법칙’이 여행 예능은 아니지만, 도시가 보여주는 문화가 비치지 않는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로망이 없다. “뉴욕까지 비싼 돈 들여가며 가서 생고생을 하네?”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정서적인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이=기본적인 컨셉트는 있었다. 뉴욕에서 화려한 시작을 할 건 아니었다. 맨해튼이 아닌 브루클린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뉴욕의 물가는 너무 비싸다. 숙소를 마련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원룸 스타일의 고시원 같은 집인데 월세가 몇 백만 원에 달한다. 돈, 계약 타이밍, 지역 등 우리가 원하는 조건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답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기 이틀 전에 극적으로 숙소를 찾았다. 지금은 뉴욕 부동산 전문가가 됐다.

고=처음엔 왜 굳이 뉴욕까지 가냐는 의문이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뉴욕이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뉴욕은 자본과 문화의 도시이자 이민자의 도시다. 그 화려한 뉴욕의 이면엔 자본주의가 빚어낸 그늘이 존재한다. 당연히 이민자의 삶은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 다룰 수가 없다. 제작비로 연결짓는 비판이라면, 사실 대부분 지상파 예능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런데 왜 돈 많이 들여 떠난 뉴욕에서 무일푼 생활을 한다는게 비판의 이유가 되는 지는 모르겠다.

이=“내용만 고생하지 하드웨어는 비싼 예능”이라는 반응이 있다는 걸 안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도시의 법칙’은 돈 많이 들이는 비싼 예능 아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스태프 역시 안 먹고 안 잤다. 지하철도 거의 타지 않아, 교통비도 안 들었다. 22박23일 촬영기간 내내 호텔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다. 음식이 해결됐던 건 고 박영석 대장의 산악팀 출신인 셰프가 합류해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 음식을 해먹었다. 항공권 요금이 들었지만, 저가항공을 탔다. ‘정글의 법칙’ 시절부터 이어온 노하우다.

정= 도시에서의 생존을 보여주다 보면 예능적 재미는 떨어진다. 여기서도 힘든데, 다른 도시의 밑바닥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는 것은 피로감이 중첩될 수 있다. ‘도시의 법칙’은 기획 자체에 자가당착이 있다. 사실 뉴욕의 화려함을 보여준다면, 그것 그대로 아쉬움이 나올 거다. 다분히 다큐적인 접근이다. 프로그램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즐거움과 판타지를 찾아야 한다.

이=예능PD 역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가진 PD관이다. 자기가 그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철저하게 웃음이라할지라도 그렇다. 뭘 보여줄 것인지를 배제한 채 찍히는 대로 만든다면, 피디적인 건 아니다. 동시에 시청자를 가르치려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요가 지나치면 시청자 입장에선 반감이 든다. 그 두 가지의 중간 지점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에선 도시인의 삶을 보는 관점은 명확하게 있다. 시청자가 받아들일 때는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한 제작진의 의도를 함께 느낀다면 감사하지만,달리 본다면 그것도 그분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예능이기 때문에 재미를 간과할 수 없다. 공감할 수 있는 편집, 늘어지는 서술보다는 간단한 명명(천가이버 등),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프로그램이 대본에 의해 움직이지도 않고, 전문MC가 진행하지도 않다 보니 실제 우리가 느낀 것이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인터뷰 기법이 있긴 하지만, 출연자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게 BGM이기도 하다. 총 10회분은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땐 열 개의 회차가 모여 기승전결이 완성되는 스토리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 안에 독특한 반전이 나온다. 이제 ‘도시의 법칙’은 뉴욕에서의 생존이 아닌 생활로 접어들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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