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불행했던 베이비부머에 바치는 비가
2년만에 장편소설‘ 투명인간’낸 소설가 성석제
현대사의 격랑속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중년…자본 앞에 무너지지 말고 살아남자고 격려
특유의 희극성 · 해학성 더 넓어지고 깊어져…“나의 세대 이야기…작가로서 무한 책임감”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창비
“나답지 않게 경건해졌죠. 허허”

지난 2일 성큼 더워진 날씨에 땀을 흘리며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인터뷰 약속 장소에 나타났고, 그 끝에 얼마나 될 지 모를 웃음과 이야기 보따리를 잔뜩 매달고 있는 것도 여전한데, 소설가 성석제(54)는 최근 최근 출간된 신작소설이자 일곱번째 장편 ‘투명인간’(창비)을 두고 “달랐다, 전에 없었다”고 했다.

“이 작품에 전력을 다했어요. 다른 소설보다 시간이 오래걸렸죠. 이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것이 4년전인데, 그 동안에는 다른 원고 청탁도 거의 받지 않았어요. 이것 끝을 내야 다음에 또 쓰겠다,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

무엇이 달랐을까?

“장편 소설은 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작가의 역량이 쉽게 드러나는 장르입니다. 사람처럼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랐습니다. 과연 소설 쓰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쓸 수는 있을까. 때때로 절망과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제 정체성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죠. 제겐 전에 없던 일이었죠. ”

‘투명인간’은 60년대에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몰락한 양반자제 후손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유난히 볼품없고 허약하며 매사 늦되기만 했던 못난 ‘만수’가 50대의 오늘에까지 이르는 일대기다. 부잣집 삼대독자였지만 일제시대 사상 문제로 고초를 겪은 후 세상을 등지고 산골로 흘러든 조부, 그와 달리 상농사꾼이 돼 억척스레 가족을 먹여살렸던 아버지, 할아버지를 닮아 맑고 영민했지만 병약했던 맏이, 근성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이기심과 경쟁심이 강해 늘 형을 업신여겼던 막내아들, 자애롭고 똑똑했던 큰누이, 예쁘고 심성이 착했던 둘째딸, 세파가 욕심과 생존본능만을 키워놓은 막내딸 등 3대에 걸친 파란만장 가족사가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바탕으로 하고 주인공 만수의 삶을 줄기로 해 펼쳐진다. 고결했지만 무능했던 선대의 이상은 무너지고, 농민의 근면함은 근대화와 도시화에 휩슬려 파산하며 , ‘우골탑’ 대학생들은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가난한 시골처녀들은 여공이나 식모가 돼야 했으며, 순수했던 여대생들은 세월에 찌들어 억척스럽고 뻔뻔한 아줌마가 되어 간 시간들. 뭐 하나 똑부러지게 잘하는 것 없지만 누구에게도 착하고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고자 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 만수는 그러나, 아무도 행복할 수 없었던 세월 속에 결국 한강의 다리 위에 선 ‘투명 인간’이 되고 만다. 

‘해학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소설가 성석제가 1960년대에서 오늘에까지 이르는 파란만장 가족과 개인사를 통해 한국 현
대사의 굴곡과 풍경을 뜨거운 시선과 차가운 사유, 능란하고 통렬한 문장으로 담아낸‘ 투명인간’을 냈다. 〔사진제공=창비]

“세계화, 비인간화, 양극화…, 한마디로 ‘악화’죠. 자본이 자본을 사냥하고, 자본이 인간을 사냥하는 시대, 죽음이 바로 곁에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소설가는 그러지 말자고 꽹과리 치면서 나가 외치지 못해요. 시속의 흐름에 예민한 우리들은 고통스럽기만 하죠. 내 몸 속에 공명통이 있는데 그것이 끊임없이 울려요. 예전에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했는데, 그것이 무너지고, 이제는 99%의 사람과 한편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죠. 독자가 99%에 있으니까요. 허허.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가득찬 이 세상에서 어떻게 써야 하나. 소설가는 그들을 위로하거나 일으켜 세워 인도해주지 못합니다. 그저 떨어져서 지켜봐주는 것, 같이 느끼는 것, 같이 앉아있고, 같이 서 있는 것, 사람들의 외침과 목소리를 받아 적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을 뿐이죠.”

늦되거나 삐딱하거나 어이없이 좌충우돌하는 인물들이 펼치는 익살스러운 소동, 탈춤 한마당이나 판소리를 닮은 풍자ㆍ해학ㆍ말의 유희로 한국 문단내 ‘독보적인 이야기꾼’으로 꼽혀온 성석제의 면모는 이번 작품에도 여전하다. 하지만 성석제 특유의 희극성과 해학성을 전에 없이 강력하게 붙들어 새로운 정조로 휘발시켜내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겪는 삶의 비극성과 시대의 잔혹성이다. 익히 경험한 ‘성석제표’ 답게 웃기지만, 그 끝에 매달리는 강렬한 분노, 한없는 슬픔, 가눌길 없는 연민은 이전의 ‘성석제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성석제는 심지어 ‘개종’이라고까지 했는데, 그의 오랜 팬들이라면 친숙함과 낯섬 모두 반가울만하고, 확장이고 심화라고 평할만하며, 그의 소설 중 최고작이라고 꼽을 수도 있겠다.

성석제는 잘 알려졌다시피, 법학도에서 문학도로,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태’했다. “시는 대상 그 자체가 되길 열망하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소설은 대상과 끊임없이 거리를 둬야 한다”고 둘을 가른 성석제는 “원고료가 많아 소설 청탁을 받고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웃었다. 소설로 전환해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낸 것이 1994년이고 공식 데뷔 단편은 1995년 계간 문학동네에 발표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로 치니 올해로 얼추 데뷔 20주년이다. 그 동안 ‘단 한번의 연애’ ‘위풍당당’ ‘인간의 힘’ ‘왕을 찾아서’ 등 장편 7편을 냈고, 십수편의 단편 소설집과 10편쯤의 산문집(공저 제외)을 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