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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회생기업 - 채권단의 동상이몽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기업이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기업 회생을 위해 채권단과 경영진이 힘을 모은다는 큰 명분 아래다. ‘이해’와 ‘노력’의 관계여야 한다. 하지만 빌려준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조바심’과, 경영권을 빼앗기지나 않을까하는 ‘의심’이 부딪히는 경우가 적잖게 목격된다.

금융기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고, 경영자에게 핵심가치는 경영권인 게 당연하다. 그런데 상대의 부족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반성이 아쉽다. 금융기관이 돈을 꿔줄 때는 빌리는 이의 상황을 꼼꼼히 살필 의무가 있다. 기업을 빚더미에 짓눌리게 했다면 경영자는 그 어떤 이유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부그룹이 좋은 예다. 채권단은 동부제철 지원조건으로 그룹 경영권과 직결되는 김준기 회장 일가의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김 회장은 당초 동부제철에 사재를 먼저 넣겠다는 채권단과의 약속을 깨고 일가의 개인회사인 비상장사들의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반성에 바탕한 이해와 노력 대신 조바심과 의심만이 가득한 모습이다.

“남을 해칠 뜻이 없으면서도 남을 의심케했다면 서투른 것이며, 남을 해칠 뜻이 있는 데 이를 알게 했다면 위태롭게 된 것이며, 일을 미처 실행하기도 전에 (의도가) 발설됐다면 매우 위험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이 세 가지는 거사에서 큰 잘못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남을 설득하는 기술이 남달랐던 ‘협상의 달인’ 자공(子貢)의 말이다.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烈傳)’에 소개된 내용이다.

경영권까지 노릴 생각이 없는데도 경영진들을 불안하게 했다면 이는 채권단의 서투름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채권단에 더 부담을 지우려했다면 총수 일가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할 수 있다. 양측 모두 이런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면 주주들과 국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이다. 물론 이들의 본심은 기업회생에 있다고 믿고 싶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찌기 경영 부실을 범죄행위와 같다고 정의했다. 기업 경영난의 공통적인 근본원인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양적 성장에 자족해 질적 전환이나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도 진단했다.

채권단은 채권 회수도 중요하지만 기업회생이란 대의를 훼손치 않아야 한다. 경영진도 남의 돈 없이 존속이 어려워진 기업을 살리는 게 먼저다. ‘백의종군’이라도 감수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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