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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생생e수첩> ‘에펠탑 효과’와 이주영 장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세계적인 명물이라는 지금의 찬사를 얻기까지 걸린 과거시간은 곡절의 파노라마였습니다. 태생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에펠탑이 세워진 건 1887년 3월 31일.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 기념 조형물입니다. 건립계획이 공개되자 파리의 문화계 지성들이 벌떼처럼 들고 나섰습니다. 천박한 모양새가 파리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설계도를 분석한 결과, 1만5000여 개의 금속조각을 250만 개의 나사못으로 조여 맨 무게 7000t, 높이 330여m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야경 속 에펠탑

예술인에 이어 일반 시민들까지도 가세했습니다. 당황한 프랑스 정부는 결국 20년 후 철거 약속을 하고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세워진 에펠탑. 그런데 고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대표 시인 폴 베를렌은 에펠탑이 보기 싫다며 세느강변엔 얼씬도 않았고, 사실주의 거장으로 ‘여자의 일생’을 쓴 소설가 모파상은 몽소공원에 세워진 자신의 동상이 에펠탑을 보지 못하도록 등을 돌려세웠다고 합니다.

어언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고 오히려 에펠탑에 대한 증오가 거꾸로 애정으로 커져갔습니다. 결국 익숙함, 자꾸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사랑하게 된다는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수백 미터나 우뚝 솟은 탑을 눈만 뜨면 좋든 싫든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러다 잔정이 들었고 주변을 찾게 되고 결국 큰 정이 들고 만 겁니다. 

센강에서 본 에펠탑

127년이 흐른 지금,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물이자 프랑스의 자긍심입니다. 명물 중의 명물인거죠. 프랑스를 찾는 관광객은 한해 3000만 명에 육박합니다. 유럽 최고 도시 파리는 유럽 관광의 백미이고 에펠탑은 찾고 싶은 명소 불변의 1위입니다.

이것을 두고 심리적 용어로는 ‘에펠탑의 효과’라고 합니다. 가까이 있을수록 친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증오 속에도 수십 년 이상을 한 곳에 버텨 온 에펠탑처럼 일과성이 아닌 꾸준한 노력이 전제돼야 사람 사이에도 이런 반전이 가능합니다. 

프랑스 대표 시인 폴 베를렌

세월호 참사현장을 두 달 동안 지켜오는 해양수산부 이주영 장관 스토리도 그런 경우 얘깁니다. 판사를 거쳐 16~19대 국회 진출에 성공한 마산이 고향인 이 장관, 중진 정치인답게 장관 청문회 땐 야당의원들조차 ‘잘 아는 사이’라며 장관발탁 축하인사를 건넬 정도였지만 취임 한 달 만에 청천벽력의 사고를 당한 겁니다.

이 장관은 이번 세월호 수습 개각에서 제외됐습니다. 교체 1순위였는데 말입니다. 청와대는 사고수습이 남아 있어 유임시켰다고 합니다만 기자는 그가 계속 장관직을 지켜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봅니다. 

‘여자의 일생’을 쓴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

이 장관의 초췌한 모습 아마 독자 여러분도 TV화면을 통해 보셨을 겁니다. 흰 턱수염에 경황없이 허겁지겁 입고 나섰던 점퍼 그대로 오늘도 사고현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국회 출석도 거부하며 현장을 지키자 일시적 면피라는 핀잔과 비난이 있었지만 그에겐 사고현장과 안타까운 가족 돌봄이 최우선이었던 겁니다.

그러다 정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이 그를 붙잡습니다. 어디 가지도 말고 잘리지도 자르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 장관은 그랬습니다. 갖은 욕설에 고함에다 멱살까지 잡히고 오가도 못하게 갇히는 신세가 돼도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진정성으로 다가서고 말을 걸고 답을 내놓았습니다. 팽목항 인근 주민들의 집도 찾아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죄인처럼 말입니다. 부러 하려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밤낮으로 아들딸을 부르다 지쳐 자신의 가슴을 치며 억센 부두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던 이들과 진정성의 교류가 있었던 겁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프로필 사진

물론 본인은 사고 수습이 끝나면 합당한 처신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장관이야 말로 일생일대 가장 값진 가치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겁니다. 본연의 임무가 뭔지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생명 이상의 교훈으로 터득했을 겁니다.

이런 장관 구하기 힘듭니다. 유가족도 실종자 가족도 이 장관이 남아서 계속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길 원할 겁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도 이 점 충분히 헤아릴 거라 믿습니다. 

/hchwang@heraldcorp.com

두달째 세월호 참사 현장을 지키는 이주영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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