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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한반도 건축, 큰상 받았지만…시대 증명할 뭔가 결핍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한국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북한 작품을 함께 한국관에 걸면서 ‘한반도 오감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곰곰히 한반도 내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과연 최고 영예을 받을 만큼 유럽 등에 비해 수려한가라고 자문해보면 그리 자신감은 없다.

남북 북단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한 세계인의 연민이 혹시 황금사자상 수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지난 50년 실제 우리 건축 예술의 현주소를 냉정히 들여다 보면, 수작도 눈에 띄지만, 도시 곳곳에 작품이라 칭하고, 문화재로 기릴만한 건축물이 즐비한 유럽 각국에 비해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눈을 좀 더 크게 떠보자.

비원 옆 창덕궁길에 위치한 LG상남도서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살던 집이다.

[사진=헤럴드경제DB]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ㆍ1867~1959년) 스타일의 이 건물은 1967년 구인회 회장이 건축가 김수근(1931~1986년)에게 의뢰해서 설계된 건물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사저를 기증해 LG상남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반지하 주차장의 채광, 돌에 새긴 십장생 부조, 세미나실 벽난로 등 강한 조형성에 섬세한 디테일까지 돋보이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김창일 아라리오갤러리 회장이 매입해 올해 9월 미술관으로 새롭게 꾸며질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사옥 역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일본식 건물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한국 근대 건축물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세운상가 역시 김수근의 작품이다.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후대의 엇갈린 평가를 뒤로 하고서라도 김수근이 한국 근ㆍ현대 건축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건축계 일부에서는 한국 건축에서는 김수근만 보인다며 상대적으로 김중업(1922~1988년), 엄덕문(1919~2012년)과 같은 건축가들의 족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광현 서울대 교수는 “한국 건축계에 유독 몇몇 건축가들에만 유독 쏠림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김수근 이후 한국 건축계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미인 선발대회’에 나가듯 건축물을 짓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대를 증명할 무언가가 없다”=올 들어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등록문화재(제586호)로 지정됐다. 지난 3월 안양에는 건축가 김중업을 기리는 김중업박물관이 문을 개관하면서 한국의 근ㆍ현대 건축물의 가치가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등록문화재에 지정되기 위해서는 ‘50년 이상 된 근대 건축물’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과연 21세기 이후 들어선 서울 도심의 유명한 건축물 중 50년 후에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게 있을까.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자 미술평론가는 “알록달록한 색깔 등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건축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고 말한다. 한국 전통 건축의 격조는 사라지고 일명 ‘코리안팝’에 물들고 있다는 것이다. 1940년대 이후 지어진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에는 문화재라고 불릴만한, 시대를 증명할 그 무언가가 없다는 우려다.

한국의 건축물들은 설계사무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건축사 면허증이 있는 사람들만이 건축물 설계를 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셈이다.

예술이 실종된 한국의 건축물에서 예술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옆 조각가 김찬식의 천하대장군처럼 기개 넘치는 작품도, 동화면세점 앞 조각가 민복진의 청동 조각상처럼 따뜻함 넘치는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다.

원로 사진작가 주명덕(74)은 “대부분이 통유리로 된 요즘 건물에는 동양화나 서양화와 같은 그림을 걸어봐야 티가 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형 사진 작품들이 주로 걸린다”고 말했다. 과거와는 달라진 ‘환경’ 덕분에 사진 작가들의 작업 환경 또한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해외 스타작가들에 갈수록 커지는 의존도=서울 도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급부상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ㆍ2014년)는 이라크 출신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원주 한솔뮤지엄(2013년)과 제주도 섭지코지 글라스하우스를(2008년) 설계했다. 강남 교보타워(2003년)는 세계적 건축가 마리아 보타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삼성 리움미술관(2004년)은 마리오 보타 뿐만 아니라 렘 콜하스, 장누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들의 손을 거쳤다.

2000년 이후 들어선 한국의 유명 건축물의 상당수가 해외 스타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한 건축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자본가, 혹은 건축주들이 명품을 사들이듯 해외 스타 작가들의 명성에 기대어 그들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과 비슷한 건물을 주문한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천만관객 한국영화’를 대박으로 평가하는 왜곡된 문화현상을 빗대어 스타 건축가에 대한 ‘쏠림’을 비판했다. 그는 “하나의 영화에 천만 관객이 드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성공 확률이 높은 특정 가치 판단에 기대어 우루루 몰려드는 이른바 ‘패스트카피(fast copy)’가 한국의 건축계에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안도 타다오가 지은 글라스하우스의 사례를 들면서 “이 건축물이 형편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성기 때의 안도 다다오라면 이렇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유명한 건축가의 명성에 기대려고 뒤늦게 ‘모셔와’ 발주를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건축물이 일반 대중에게 어떤 의미인지, 10년후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고, 예쁜 것, 좋은 것만 좇는 경향이 있다”며 건축에 대한 평가가 미적인 측면에 치우치는 풍토를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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