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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선비들의 글과 풍류를 현대 음악으로 만나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혼자 걷다가 집에 돌아와/혼자 마루에 걸터앉으니/기댈 곳 없이 쓸쓸한 마음/달빛이 가만히 비추어 주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쓴 한시 ‘추야(秋夜)’의 마지막 구절 ‘獨行還獨坐(독행환독좌) 明月照幽襟(명월조유금)’에 깃든 고독의 정서가 현대 우리말로 되살아나 피아노 선율을 타고 아득하게 퍼져나간다. 과거와 현재가 시공을 초월해 마주하는 이 음악적 풍경은 수묵화처럼 담담해 잔잔한 감동과 슬픔을 전한다. 싱어송라이터 권진원,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 해금 연주자 강은일의 프로젝트 앨범 ‘만남’의 수록곡 ‘달빛’에 대한 얘기다.

‘만남’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에 실린 정신과 풍류를 오늘에 되살리는 야심찬 시도를 담은 앨범이다. 권진원은 ‘살다보면’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 등의 히트곡을 남긴 가수로, ‘버클리음대 유학 1세대’ 재즈 뮤지션인 한충완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실험으로, 강은일은 한국을 대표하는 해금 연주자로 이름을 알려왔다.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장르의 벽을 허물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는 목표 하에 의기투합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추야’를 비롯해 피아노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화를 통해 과거와의 접속을 묘사한 ‘만남’, 이황의 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를 음악으로 옮긴 ‘봄밤의 매화’, 권진원이 선비의 마음으로 시상(詩想)을 떠올려 만든 ‘벗을 마중하러 가는 길’, 이황의 시 ‘영송(詠松)’을 피아노 연주로 풀어낸 ‘소나무처럼’, 정약용의 시 ‘백운(白雲)’을 소재로 덧없이 흩어지는 구름처럼 문득 이 세상을 초연히 떠나고 싶다는 내용을 노래한 ‘흰구름’은, 이이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산중에서 길을 잃은 불안과 혼란을 통해 인생을 은유한 ‘산중’, C메이저 코드로 시작해 5개의 코드를 지난 다음 다시 C메이저 코드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성을 통해 계절ㆍ인생ㆍ역사의 순환을 표현한 ‘순환’ 등 8곡이 담겨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는 권진원이다. 권진원은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맡았다. 노래와 연주의 영감을 얻기 위해 권진원, 한충완, 강은일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답사하기도 했다.

권진원은 “지난 2008년 우연히 옛 선비들의 글을 읽고 음악적 화두를 얻은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단초가 됐다”며 “오랜 구상을 거쳐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곡 작업을 시작해 2년 동안 16곡을 만들고 엄선해 최종 8곡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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