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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호주라는 먼 국가에서 벌어지는 한국인끼리의 ‘임금착취’
[헤럴드경제=허연회 기자]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나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 호주. 호주는 19~30세 이하 한국 청년들이 한 해 1만명 이상씩 찾는 나라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문화를 체험할 요량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 호주 땅을 밟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하는 호주 한인 사회의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 없다. 한 해 1만명 이상씩이나 찾다 보니, 주어진 일자리가 부족해서 일까. 한국인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비자 보유자)들의 상당수는 한인 식당 업주들로부터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방문한 호주에서 만난 한인 워홀러들의 반응은 분노 자체였다. 현지의 최저임금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자신들의 임금을 착취한다는 주장이었다.

호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현재 16.88 호주달러 수준으로 이를 매매기준 환율로 원화로 환산할 경우 1만6000원 안팎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5210원)의 3배 수준인 셈. 꽤 많이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맥주 한 잔에 7000원 안팎하고, 담배 한 갑에 2만원이 넘는다. 제대로 된 식사 한끼 하려면 3만원이 훌쩍 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시드니 등 대도시의 살인적인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규정을 지키면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하는 한국업주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일부 업주는 “한인 식당은 한정적인데 반해, 노동수요가 넘쳐난다. 일자리를 갖는 워홀러는 수혜자다. 그런데도 반드시 최저임금제를 지키라고 하면 지켜지겠느냐”고 반문한다.

수요공급 논리로 따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임금이다. 그런데도 굳이 고학하겠다고 수십만리 먼 이국 땅을 찾은 고국 학생들의 등을 치는 게 맞을지 의문이다.

기자는 국제통화기금(IMF)가 도래하기 전인 1997년 호주에서 1년간 워홀러로 생활한 바 있다. 물론 당시 호주엔 지금처럼 워홀러들이 많지도, 한인들이 많지도 않았다. 그 때문일지는 몰라도 당시엔 한국인 워홀러들을 홀대하는 한인업주들은 없었다. 최저임금제도 잘 지켰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 수 있는 시간당 임금은 당시 1500원 안팎이었지만, 호주에서는 시간당 10~13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8년이나 지난 지금, 호주의 워홀러들이 받는 시급은 10달러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임금 수준은 오히려 열악해진 것이다. 한인 워홀러들에 시급 10달러를 주는 한인 업주들의 임금 착취는 시정돼야 한다. 최근 워홀러 가운데 일부는 호주 노동청에 이러한 불만을 제기했고, 호주 노동청 역시 한인 업주들을 대상으로 사실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먼 타국에서 한인 업주들에 의해 자행되는 한인 학생 대상의 불법적인 임금 착취는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탈법과 편법, 요행만 일삼는 한국인의 모습이 호주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okidok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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