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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려울땐 껴안자…허그경영 바람
현대엠코-엔지니어링, 삼성SDI-제일모직 합병…불황기 내부서 활로…조직 떼고붙여 성장판 구축

‘나눠지면 합치고, 합쳐지면 나눠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나관중 ‘삼국지’ 첫 문장이다. 기업도 비슷하다. 호황 때는 나눠져서 전문화하고, 불황 때는 뭉쳐서 시너지를 추구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최근 우리 재계에 일고 있는 이른바 ‘허그(hug)’ 경영도 이같은 흐름의 하나다.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핵심역량을 집중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껴안는 상대가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현금이나 인력 유출이 거의 없고, 통합에 따른 기회비용도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출범한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법인, 최근 주주총회 승인을 얻은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은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종합화학과 합병하는 삼성석유화학, 삼성SNS와의 합병 후 상장 추진 계획을 밝힌 삼성SDS, 현대하이스코 냉연사업부문을 합병한 현대제철, 실리콘웍스를 인수한 ㈜LG, 두산산업차량과 옌셰이퍼를 껴안은 ㈜두산 등의 사례도 같은 범주에 든다. GS에너지도 2차전지 소재를 만드는 방계 계열사 코스모신소재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고, CJ그룹도 CJ E&M에서 떼어낸 넷마블을 CJ게임즈와 묶을 예정이다.

대기업 뿐 아니다. IT소재 기업인 동진쎄미켐은 최근 자회사였던 동진디스플레이재료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고, LED스마트 초명업체인 필룩스는 중국 웨이하이와 산둥 법인을 하나로 합쳤다. 물류기업 승화산업은 광고대행 자회사인 파워엠이엔티를 흡수했다. 이밖에도 동화기업과 웹젠은 각각 자회사인 원창흥업과 웹젠이미르게임즈를,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는 자회사 조이맥스가 손자회사 링크투모로우를 합병하기로 했다.

허그경영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해 애플은 기존에 분리돼 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통합했고, 글로벌 제약기업 로슈(Roche)는 진단의학 부문과 생명공학 연구기능을 합쳤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일본도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산업기반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되자 합병과 사업통합, 제휴 등을 통해 생존을 모색했었다”면서 “다만 당시 일본이 다수기업의 과당경쟁체제에서 소수기업의 메가(mega) 경쟁체제로의 전환을 꾀했다면, 우리 기업들은 국내에서는 이미 메가 경쟁체제를 갖춘만큼 향후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미래 신사업 육성 동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허그는 시장과 주주의 ‘축복’으로 완성된다. 한솔제지와 한솔로지스틱스가 지난 해 봄 각자의 투자사업부문을 분사한 후 이를 하나의 지주사로 묶으려 했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박수를 받을 만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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