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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함영훈> 대한민국 헌법과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
“우리도 이렇게 거친 인간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이 세상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타락한 인간 군상들의 일상과 회한을 그린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오페라는 타락의 근원을 사회구조에서만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다소 극단적이다. 인간의 주체적 노력에 의해 타락을 면할 수도 있으련만, 사회적 약자와 강자를 극명하게 구분해 강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는 점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시사하는 대목은 완력과 지혜의 열세, 장애 또는 결핍을 갖고 있는 ‘숙명적’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솟아날 구멍을 찾지 못할 경우, 치명적 불행을 당하거나 매춘과 강ㆍ절도 등 범죄 유혹에 쉽사리 넘어간다는 점이다.

‘숙명적 약자’는 힘이 약한 저소득층 여성, 지혜와 경험이 충분치 못해 판단이 미숙한 청소년, 기력과 지혜 모두 저하된 노인, 물리적 기능이 결핍된 장애인 등이 대표적이다.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약육강식의 환경 속에 방치돼 주체적 노력으로 어찌할 바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면, 국민 기본권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책무, 탐욕적 경쟁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문제까지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랐던 ‘미성숙 국민’인 학생들이 참변을 당했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에서는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병약한 노인들이 대거 희생당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 배후엔 기업가의 탐욕과 ‘관피아’로 불리는 권력 및 금전 나눠먹기 구조가 있었다. 장성 요양병원의 비극에서는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배려가 부족했음이 드러난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경고했던 독일 뮌헨대 울리히 벡 교수는 2008년 국내 강연에서 한국의 경제적 고도성장 속도에 비해 사회체계가 갖춰지는 속도는 매우 느렸음을 들어 “성찰 없는 근대성의 과잉으로 초위험사회가 됐다”고 꼬집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세월호 이후 불과 한 달 반도 안된 시점에 지하철, 터미널, 병원, 대형마트 등 곳곳에서 10건의 사고가 연쇄적 발생한 ‘팩트(fact)’ 앞에서 벡 교수의 지적을 부인할 수 없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2012년 1월 “우리(자본가)가 죄를 지었다”고 토로한 뒤, “시장경제체제는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사회 통합 의무가 빠졌고 우리를 위기로 내몰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 헌법 10조, 34조는 국민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함께 이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다. 특히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자, 병자, 재해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열거하면서 국가가 보호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제헌 이후 작금의 통치자들은 헌법을 ‘서푼짜리’로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약자들의 희생과 함께 경제 마저 앓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은 ‘퍼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 경제 주도층들이 원래 했어야 할 의무라는 사실을 연이은 참사들은 일깨운다. 

함영훈 라이프스타일부장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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