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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생생e수첩> 희한한 검찰
아니나 다를까요. 꼴사나운 일이 지칠 대로 지친 우리 국민들 앞에 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수사, 이런 검찰 처음 본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랬습니다. 일단 어제(21일) 오전 상황을 보죠.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전 세모그룹 회장)이 이미 금수원을 빠져나가 신도 집에 숨은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전날 오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라는 겁니다. 지난 17일 토요 예배를 전후해 몰려든 신도들 틈에 끼어 유유히 자취를 감췄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전국 6대 지검 강력부·특수부 수사관 120여명으로 지역 검거반을 구성해 그의 뒤를 쫓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앞뒤 없이 이 부분만 클로즈업해 보면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자는 이런 분위기의 뉴스를 접하고 주변 몹시 격한 표현을 동원하며 비판을 했었습니다. 하루 지난 지금 감히,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조직이자 고래심줄 같은 파워까지 가진 검찰의 꼴불견 명장면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렵니다. 검찰로선 나중에 들킬 값이라도 감춰 쉬쉬해야 마땅한 일들을 도리어 공개하고 있으니까요. 참으로 알 수 없는 그들입니다.

더 가관은 그 이후입니다. 그래놓고 검찰은 바로 어제 금수원에 수사팀을 보내 구인장 집행을 시도했고 벌떼처럼 몰려든 구원파 신도들과 몇 시간을 줄다리기를 한 끝에 “구원파는 오대양사건과 무관하다”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순순히 들어주는 조건으로 금수원에 공권력 투입과 압수수색에 성공하게 됩니다. 언론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부수조건까지 오케이 하면서.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의 장소에 진입하면서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 그리고 그들의 허락을 받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들의 안내를 받다 시피하며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는 한 무리의 수사진과 그들을 엄호하는 듯해 보이는 기동경찰병력의 그림이 우스꽝스럽게만 다가옵니다. 

헛탕친 검찰ㆍㆍㆍ유병언 회장이 은신했다는 금수원의 빗장이 9일만에 풀려 검찰 수사 차량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 회장도 그의 장남 대균 씨도 그 곳에 없었다.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그 이유는 이미 검찰이 밝힌 바 있습니다. 거기엔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유 회장 아니면 그의 장남(유대균)이라도 어떻게 해볼 참이었지만 건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 8시간 온통 난리법석을 떤 검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유 회장 부재’ 언급이 금수원 내부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된 정보’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기사가 나온 후 상당수의 지방 신도들은 짐 보따리를 다시 싸매고 현장을 떠났으니까요. 그러나 결과는 검찰 말 그대로였습니다.

결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안이한 초기대응’이 남습니다. 검찰은 소환통보를 하면서 유 회장의 사회적 지위 운운했습니다. 이 판국에 사회적 지위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기자에겐 의아했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젊잖게 그를 봤거나 만만하게 봤거나 그렇습니다. 아들 둘을 부르다 안 먹히니까 아버지를 족친다는 ‘패밀리 미끼’ 작전 치고는 너무 미지근했던 겁니다.

도주했다면 그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사방팔방 몇 개 중대를 둘러친 수사대였습니다. 유 씨 일가가 지하소굴이라도 판 게 아니라면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 회장 부자가 금수원에 없어도 있어도 검찰은 망신입니다. 금수원에 없다면 금수원의 그들은 일찌감치 보스 빼돌리기와 검찰과 그 병력을 한데 옭아매는 것까지 줄줄이 뜻을 이룬 것이 됩니다. 한마디로 농락당한 검찰인 거지요. 더구나 그들은 검찰의 엄정한 법집행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만천하에 홍보하는 짭짤한 부수입까지 거둬들였습니다.

이제 검찰 수사팀에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아낌없는 협조라고 합니다. 대놓고 제보와 여러 채널에 의존해 하루빨리 검거하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고 한심스런 풍경입니다.

헛발질은 축구에서만 낭패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고질병 중에 하나가 뒷북치는 것과 헛발질이란 것이 있습니다. 금수원에 진을 친 신도들과 물리적 충돌을 피할 요량으로 대화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했고 결국 ‘협조와 안내’ 수사를 택했겠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란 말이 지금 딱 들어맞는 형국입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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