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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김윤희> 빈대 잡으려다 초가집 태울 정부
주유소 사장님들이 요즘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가짜 석유 유통을 막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주유소 석유류 거래량을 기존 월간 단위에서 주간 단위로 변경키로 한데 대해 반발해서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 더 고용하면 될 듯 한데 주유소 사장님들은 “동맹 휴업 불사”까지 외치고 있다.

그러나 주유소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주유소협회가 지난해 말 전국 2704개 주유소를 조사한 결과 주유소당 연간 평균 영업이익은 고작 3800여만원. 대기업 대졸자 초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장이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하루 14시간씩 주유소에 매달려도 한달 수입이 200만원에 불과한 주유소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잘나가던 주유소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간 단위 보고가 월간 단위보다 주유소 거래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가짜석유 적발에 용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유소 업계는 “거래상황보고서 작성에 평균 4~5시간이 소요된다. 영세한 주유소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가짜 석유 문제는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유소 경영난이 심화되다 보니 석유를 편법으로 속여 팔아 국내 석유시장을 교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로선 가짜 석유를 잡기 위해 더 자주 거래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주유소 운영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워선 곤란하다. 현실과 어긋난 규제는 수많은 범법자들을 양산할 것이다. 이미 주유소 업계는 ‘무더기 과태료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장부 대조를 통한 한국석유관리원의 가짜석유 적발률은 평균 1%. 반면 경찰과 지자체의 단속률은 평균 3.46%이다. 주유소 업계가 “장부 대조를 통해 가짜 석유를 파악하는 것은 주유소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일본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노상검사제 확대나 사후환급제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가짜 석유 유통을 파악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다. 그로 인한 부담도 정부가 져야 한다. 그래야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희 산업부 /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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