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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함영훈> ‘영원한 스승’으로서의 책무
[헤럴드경제=함영훈 라이프스타일 부장] 뽀송뽀송하던 학창시절 처음 인연을 맺고는 상급학교 진학과 졸업, 취업을 거쳐 머리에 서리가 내린 때라도 찾는 게 스승이다.

스승은 세상을 살아가는 숱한 지혜 중 가장 기본이 되며 인간다운 삶의 방향타가 될 수 있는 것을 머리와 가슴에 착상시키는 분이라, 졸업을 해도 나이가 들어도 정감을 느끼는 대상이다. 좋은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나의 순진하면서도 거칠었던 청소년기를 잡아주던 그 눈빛이 아직 곁에서 응시하는 것 같아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

그래서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수천명의 제자를 배출해 나라 경영의 핵심 인재로 키우고, 수기치인(修己治人: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의 ‘실천’ 덕목을 세상 사람들에게 설파한 공자(孔子)는 만세사표(萬世師表:영원한 스승의 본보기)라는 시호를 얻기도 했다.

좋은 교육자는 세상을 밝게 하고 정신적, 문화적, 물질적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킨다. 바꿔말하면 세상이 어두우면 교육 역시 잘못됐다고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가 2014년 어버이날을 초상집 분위기로 만들더니, 스승의날 마저 망쳐놓았다.

철학이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추상적 지혜이고 법학이 사회 각 영역의 합리적,인간적 운영을 가능게 하는 도구라면, 교육은 모든 영역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제공하며 사람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역대 청와대와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만의 문제가 아니듯, 교육은 교육부만의 것이 아니고 모든 정부 부처에 고루 영향을 미친다. 행정도 교육자가 길러낸 인재들이 하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세월호 참사앞에서 교육자들이 스승의 날 반성문을 써냈다. 연세대 교수 131명은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킨 사회를 질타·개혁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고 편승하려 하지 않았는지 자성한다”고 했다.

경희대 인문교양 교수 179명도 ‘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그들은 “권력 누리기에만 골몰하는 정치권과 관료,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과 시장,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뒤엉킨 결과”라고 진단한뒤 “사회적 불의에 적극 개입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육,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교육” 등을 요구했다.

재미 한인 교수와 외국인 학자 1074명도 정부의 책임을 묻고 공익을 위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으며, 한국교총은 스승의 날 기념식을 열지 않고 스승주간인 12∼18일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애도주간으로 정했다.

교육의 중차대함에 비춰보면, 침몰한 세월호 앞에서 반성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빠진게 있다. “스승으로서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주체적 실천의 표현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와 관련해 네 번이나 사과하는 등 우리는 큰 일이 터질때마다 문제점을 통렬히 해부하거나, 자성하는 모습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그럼에도 사태는 늘 되풀이되었기에, 국민들은 뭘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속 시원한’ 말을 듣고 싶지만 이번에도 없었다.

전문가 답게, 지혜의 산실 답게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낡고 잘못된 관행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는지, 인정머리 없는 시장 대신 따뜻한 자본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고리부터 고쳐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대체로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5060세대가 된 점 감안해, 교육자들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고 올바른 리더십을 함양하는지 지켜보고 충고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경쟁 완화, 인성 중심의 어떠어떠한 교육개편안을 내겠다고 했어야 했다.

100번의 교실강의보다 한번의 장애우 체험, 피난,구난 체험을 제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식의 ‘실천적’ 다짐이 있어야 했다. 아울러 기자가 된 제자에게는 “기사 잘 봤는데, 너 스스로는 잘 지키고 있니. 왜 A는 놔두고 B만 쓰니”라고 전화라도 걸겠다고 하고, 우리 사회에서 중책을 맡은 제자들의 직역을 둘러싼 부조리의 가능성을 모니터링하고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당부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니 말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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