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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사고 일어나곤 한다”…터키 총리의 무개념 발언
탄광사고 ‘정부 안전불감증’ 비난
탁심광장 시위 “근로자 무덤” 격분
탄광업계와 유착설도 터져
8월 대선 향배 미궁속으로



터키 소마 탄광 폭발 참사가 사상 최악의 인재(人災)로 드러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12년차를 맞은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강경진압하며 여러차례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지난 13일(현지시간) 발생한 터키 역사상 최악의 탄광 사고로 정부의 안전불감증과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분노한 민심이 폭발하면서 전국적인 정권 퇴진운동으로 비화되고 있다.

▶최악 人災에 노동자 분노 폭발=이번 사고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274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120여명이 매몰돼 있어 사망자는 최대 400여명까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알바니아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황급히 사고가 발생한 마니사주 소마 탄광을 찾았다. 하지만 사고현장에서 “이런 사고는 일어나곤 하는 것”이라는 에르도안의 발언은 광부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4일 사고현장을 찾은 에르도안 총리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가 없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영국에선 1862년에 204명이, 1866년엔 361명이, 1894년엔 290명이 죽는 (탄광) 사고가 있었다”고 사례까지 들었다.

이 발언에 기자회견장 근처에 있던 유족 수백 명과 시위대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들은 에르도안 총리에게 몰려들었고, 총리는 결국 경찰에 둘러싸인 채 인근 수퍼마켓으로 피신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일부는 총리의 차를 발로 차기도 하고 총리를 향해 ‘살인자’ 또는 ‘도둑놈’이라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소마 시내에서도 에르도안 총리가 속한 정의개발당(AKP) 본부로 몰려가 돌로 창문을 깨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프랑스 AFP 통신은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을 두고 “사고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AP 통신도 “완전히 감을 상실했다(tone-deaf)”고 꼬집었다.

이번 참사에 분노한 시위대는 이스탄불의 탄광 회사 ‘소마 홀딩스’ 앞에서 얼굴을 검게 칠하고 ‘살인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탁심 광장에서는 좌파 신문 머릿기사를 읽으며 “터키는 근로자들의 무덤”이라고 말했으며 “이것은 사고가 아니라 무관심이었다”라고 외친이들도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노동조합 대표단은 허술한 탄광 안전 기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수도 앙카라에선 800명의 시위대가 탄광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에너지부 청사에까지 행진해 반정부 구호를 외쳤고, 경찰은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크즐라이광장에는 3000~40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에르도안, 탄광업계 유착설=오는 8월로 예정된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에르도안 총리는 그간 터키 탄광업계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AFP는 전했다.

지난달 29일에도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소마 탄광에 대한 안전 조사를 요구했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AKP는 이를 부결시켰다.

영국 일간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등은 지난달 최대 야당인 공화인민당(CHP)가 사고가 난 탄광에 대해 안전조사를 요구했으나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이를 부결시켰다고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마니사주 CHP 소속 외즈귀르 외젤 의원은 의회에서 소마 탄광의 잦은 사고를 언급하며, 지난 2012년에만 3번의 화재가 있었고 지난해 10월에도 사고가 발생하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히고 개선조치를 요구했으나 AKP 무자페르 유르타시 의원 등 집권당이 “터키의 탄광 시설이 외국보다 안전하다”며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당 책임론과 함께 정부의 안전 불감증과 탄광 민영화 이후 무리한 경영 등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히면서 에르도안 총리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됐다.

지난해 이스탄불 탁심광장 게지공원 파괴 반대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집권당의 부패 규탄 시위로 변했고, 강경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최근엔 노동절 집회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해 연행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지난 3월30일 치른 지방선거에서 AKP는 45.54%의 득표율을 기록해 야당인 CHP(31.04%)와 민족주의행동당(13.65%) 득표율 합계(44.69%)를 앞섰으나 근소한 차이를 보여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두 야당이 오는 8월 실시될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꾀하면서 대권의 향방은 가늠할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졌다.

야당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6월부터 시작되는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태세다.

터키 대선은 8월 10일 예정된 1차 투표를 통해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주 뒤 결선투표를 치른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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