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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박지성, ‘두개의 심장’ ‘세개의 폐’ 로 달린 영광의 발자취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영원한 캡틴’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25년 동안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박지성은 14일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은 제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것을 전하게 됐다”며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당초 박지성은 원 소속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퀸즈파크레인저스(QPR)가 프리미어리그(1부) 승격 여부에 따라 은퇴 시기도 조율할 것으로 전망됐다. QPR은 오는 24일 더비카운티와 프리미어리그행 티켓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하지만 박지성은 예상을 깨고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었다.


박지성은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며 “여러 선배님들의 은퇴 모습을 보며 나도 눈물이 날까 했는데 어제까지 눈물이 안 나오더라. 오늘도 역지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만큼 선수 생활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고 했다.

이로써 1990년 세류초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박지성은 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교토상가(일본)-에인트호번(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퀸즈파크 레인저스(QPR·잉글랜드)-에인트호벤으로 이어진 화려한 축구 인생을 마무리했다.

‘두개의 심장’ 박지성이 걸어온 길은 그대로 한국 축구의 새 역사였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한국선수 첫 득점, 한국인 첫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이상 2005년), 아시아 선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2007년), 아시아 선수 첫 UEFA 챔피언스리스 우승(2008년) 등.


하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특출난 개인기도, 월등한 체격도 없었다. 평발이어서 조금만 뛰어도 피로를 느꼈다. 엘리트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지성을 눈여겨본 대학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수원공고를 이끌던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가까스로 명지대에 입학하면서 박지성의 축구 인생에는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행운을 누렸고 이를 발판으로 그해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한다.

그리고 대망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눈부신 축구인생 2막이 시작됐다.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탈락시키는 결승골을 터뜨려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해 교토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키고 사상 첫 일왕배 우승컵까지 선물한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3년 초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입단한다.

그리고 2년 6개월 뒤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학창시절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갈고 닦었던 체력과 활동량은 그가 맨유에 안착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맨유 팬들은 그에게 ‘세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맨유에서 7시즌 간 총 205경기를 뛰면서 27골을 넣었다. 맨유가 1878년 창단한 이후 134년간 개인 통산 2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박지성을 포함해 92명뿐이었다.

하지만 에인트호번 시절 오른쪽 무릎 반월형 연골판 제거 수술을 받은 박지성은 2007년 4월 연골 재생 수술을 받고 9개월간의 재활을 견뎌야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유럽 진출 팀이었던 에인트호번으로 돌아간 박지성은 어느새 고질이 된 무릎 부상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한편 박지성은 은퇴 선언과 함께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와 결혼 날짜도 공식 발표했다.

아버지 박성종 씨, 어머니 장명자 씨와 동석한 자리에서 박지성은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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