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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미리 운명을 알아보겠다고 덤비는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고 태양계의 끝에서 외로운 명왕성을 향해 우주선까지 보내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정월이면 미신으로 치부 받는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점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면면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가방끈을 길게 늘어뜨린 점잖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점집문화답사기(웅진지식하우스)’는 21세기에도 왜 이런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유쾌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복채를 들고 이름난 점집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검증에 나선다. 저자가 문을 두드린 곳은 신점, 사주, 관상, 성명, 손금, 타로 등 현재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점집을 망라한다.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저자는 관상가에겐 성형수술자를, 성명점집에는 기혼자를 미혼자로 속여서 데리고 가는 등 흥미로운 시도를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능청스러운 저자의 입심은 책 곳곳에서 폭소를 유발한다.

“과연 갓 신내림 받은 루키 보살다운 팔팔한 기개를 담아, 태권 유단자 송판 쪼개듯 반말과 욕설과 질책을 날리는 무시무시한 질타를 엿듣고 있던 나는, 반말 및 욕 타작 들어먹을 가능성 그다지 높이 않은 초진 고객임을 하늘에 우러러 감사함과 동시에, 자칫 ㄱ보살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개인 신상 및 상담 내용이 대기실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리라는 두려움에 굿판의 대나무 떨 듯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2쪽)

자칫 흥미 본위로 빠지기 쉬운 소재를 절묘하게 균형 잡는 서술은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엉터리를 만나 실망하기도 하고, 놀랄 만큼 뛰어난 적중률에 감탄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점술가들의 개성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적중률이 높았던 곳에선 반대 사례도 언급하며 냉정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있노라니 갑자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이름과 관련하여 던지고 있는 질문, 즉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까’라는 질문 자체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151쪽)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예상대로 점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태도를 취한다. 일도양단의 결론은 없어도 저자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태도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저자는 “삶은 공작기계에서 매끈하게 깎아낸 금형에 부어진 쇳물이 아니라 진창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의 신발에 묻은 진흙”이라며, 삶이 합리와 논리에 따라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즐겁고 감동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종종 점집에 끌리는 것은 어쩌면 오로지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맞이하게 될 백색 실명의 위험을 감지한 본능이 경고를 보내기 때문은 아닐까. 점집이라는 아주 작고 허술한 어둠 또는 그늘 밑에서 잠시라도 빛에 지친 눈을 쉬게 해주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293쪽)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이런 문제를 이런 접근과 센스와 문체와 유머로 풀 사람은 한동원밖에 없다는 걸 애저녁에 알고 있었다”며 추천사를 남겼다.

저자는 어떤 점집이 더 용하고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주진 않는다. 그저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 점집 옐로 페이지’라는 제목의 별책부록 하나를 던져줄 뿐이다. 궁금하면 별책부록 참조.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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