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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 “지리산 장마때 남편 잃었는데, 이번엔 딸 잃었다더라”
-실종자가족 ‘발’된 택시 자원봉사자가 전하는 눈물겨운 사연
-“나 역시 친구 잃은 딸이 이민가자고 해서 가슴이 먹먹”

[헤럴드경제=김기훈ㆍ손수용(진도) 기자] “지인이 한번은 실종자 가족 어머니 한 분을 (택시에)태웠는데, 지리산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렵게 두 딸을 키우며 살았는데, 이번 침몰 사고로 고등학생 딸을 잃은 거에요. 그 사연을 전해 듣는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지난 30일 진도 실내체육관 인근에서 만난 김병복(47ㆍ사진 오른쪽) 씨는 실종자 가족을 위한 수송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하루에도 수 차례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실내체육관과 팽목항 그리고 목포 등지의 병원을 오가며 실종자 가족들의 ‘발’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울다 지쳐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기도 어려운 실종자 가족을 돕기 위해서다.

김 씨가 처음 진도로 내려온 것은 지난 21일. 김 씨는 새벽 4시30분 안산시에서 지원하는 차량을 몰고 420여㎞ 떨어진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이후 오전 10시 30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으로 향하는 실종자 가족 4명을 첫 손님으로 모신 뒤 목포의 병원 등을 오가며 오후 11시 20분까지 숨 가쁘게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는 “자식 시신이 바뀐 기구한 사연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어머니가 발견된 시신 특징이 아무래도 자기 딸 같다고 해서 체육관에서 목포 기독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셨는데 이미 다른 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있는 거에요. 자식 잃은 것만도 서러운데 얼마나 황당하고 속상했을 지….”

결국 장례 도중이라 어머니는 차마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채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시신이 바뀐 게 맞다는 걸 나중에 듣게 돼 땅을 쳤다고 김 씨는 전했다.

무엇이 생계조차 제쳐두고 김 씨를 먼 진도 땅까지 내려오게 했을까.

김 씨는 자신의 딸도 안산의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딸 역시 단원고로 진학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고, 희생자 가운데 딸 친구들도 많다”며 “내 딸 또래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도저히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 주엔 진도에서 2박 3일을 보냈고 이번 주는 일단 1박 2일을 머문 뒤 다른 자원봉사자와 교체돼 안산으로 올라갈 계획이다.

“더러 직장 동료들이 “회사 일 제쳐두고 어디 가냐”고 하는데 우리 딸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김 씨는 말했다.

“친구들을 잃은 딸이 의연하게 있다가도 간혹 “아빠, 이민 가자”는 말을 해요. 어린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그런 말을 할까요….”라며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유독 강한 바닷바람에 큰 폭으로 벌어지는 일교차, 언제 어디로 가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있을 지 몰라 매번 김 씨는 늘 차 안에서 쪽잠을 자는 형편이다.

“이렇게 차만 있어도 고맙죠. 거친 바닥에서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죠”라며 그는 애써 웃어보였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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