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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칼럼 - 이종덕>‘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지난 4월 25일 KBS교향악단은 예술의전당에서 음악감독 요엘 레비의 지휘로 베르디가 남긴 세기의 걸작 ‘레퀴엠’ 전곡을 무대에 올렸다.

레퀴엠(Requiem). ‘안식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 곡은 망자의 가는 길을 위로하고 영혼을 달래주는 미사 음악이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일찍이 정해져 있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연은 자연스럽게 추모의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내심 짐작했었다.

교향악단의 지휘자 요엘 레비는 연주 전 단상 위에서 깊은 애도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이 곡을 헌정합니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그 어느 때보다 장엄했다. 숨죽인 객석은 공연 내도록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고 필자 역시 형태 없는 슬픔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와 아깝게 져버린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진심어린 기도를 드리게 됐다.

공연이 끝나고 자리를 뜨는 관객들은 마치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나온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아…함께 슬퍼하고 아픔을 나누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지 오늘로 15일째다. 문화계는 대부분의 축제를 취소하고 기업의 이벤트성 행사는 가급적이면 규모를 축소하거나 연기했다. 필자 역시 좀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번 참사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많은 요즘이다. 진행예정이었던 공연들은 잠시 멈추어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동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기획해 그 내용면에서도 나무랄 것 없는 공연들을 무분별하게 취소시키는 것은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월 26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릴 예정이던 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뷰민라) 개최를 앞둔 하루 전날 고양문화재단은 주최사에 취소 통보를 내렸다고 한다. 주최측은 공연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숙연하게 꾸미겠다는 뜻을 충분히 밝혔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생각에 잠기게 만든 것은 한 대중 가수의 발언이었다.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노래하고 싶었는데 가벼운 딴따라질로 치부돼 가슴이 아프다. 이 나라가 아티스트를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노래한 영원한 가객(歌客) 밥 딜런을 떠올렸다. 그는 월남전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 더이상 국가의 이기심이 낳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두고 볼 수 없는 마음을 표현했던 한 대중가수의 노래가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노래는 영향력을 미쳤다.

‘원 모어 컵 오브 커피(One more cup of coffee)’는 먼 길 떠나는 친구에게 커피 한잔 더 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밥 딜런의 노래 제목이다. 그냥 대중가수의 노래일 뿐이다. 그 가사 속에는 아무런 의도도 계산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의 아픔’을 가슴 터져라 부른 아티스트의 마음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현듯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추스르기 힘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러고 있을 터인가? 남아 있는 자들은 아깝게 떠난 이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가슴 아픈 비극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울림이 퍼져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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