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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 e수첩> 4월과 엘리엇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S.엘리엇<사진>의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1922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기서 엘리엇이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해 문학활동을 했다는 사실, 그의 시 황무지가 모더니즘의 금자탑이라는 사실 등은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은 무슨 연유로 4월을 그렇게 노래했을까요. 이게 물음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 시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된 배경은 또 뭘까요.

T.S.엘리엇

바로 시대반영이기도 하고 시대동참입니다. 참혹한 1차 세계대전, 그로 인한 세계의 황폐함과 정신적 불모 상태를 지성의 불만을 통해 낱낱이 묘사하고, 동시에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구구절절 담아냈다는 평가입니다.

그 때 그 시절이후 한동안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일제의 잔혹상이 극에 이를 때였고, 우리 국민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습니다. 더구나 이맘때는 먹을 것이 고갈된 춘궁기, 보릿고개도 절정이었습니다.

여기에 4.19혁명을 비롯해 정치·경제·사회적인 변고나 변수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계절은 찬란하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인간의 삶은 초라하기에 상대적으로 잔인한 달이라 말했으리라 그렇게 생각됩니다.

T.S.엘리엇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황무지'표지

2014년 참혹의 4월 마지막 날, 세월호 참사 15일째지만 온 나라가 비탄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려 달라”는 절규에 “미안하다”는 말만 웅얼대며 무기력에 치를 떨 따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울어 제칠 기력조차 잃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곳에 그 무엇도 아닌 어른들만 없었더라도ㆍㆍㆍ” 이제 와 가슴 치며 후회한들 소용없습니다.

5월,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이 이어지지만 이제 절망을 걷어낼 채비도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부러지고 끊어진 일상을 되돌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참담과 암울의 터널에 갇혔어도 끝내 희망의 빛을 찾아 기적처럼 살아 버텼던 적이 우리 어디 한 두 번입니까.

비가 오면 땅은 더 굳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죽을 각오로 이 땅위의 적폐(積弊)를 환부 도려내 듯 낱낱이 없애 버려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합동분양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들을 만나 반드시 그러러리 약속 했습니다. 임기 초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통탄스럽다고 했지만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 내야만 그나마 떠난 졸지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억울함을 덜고 유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그래야만 살아 남아 있는 우리 모두도 살아 갈 수 있게 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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