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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하와이 이주 조선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미국의 소설가 앨런 브렌너트가 하와이 이주 조선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사진신부 진이(문학수첩)’를 국내에 출간했다.

이 작품은 외국인인 저자가 조선의 평범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마치 존재했던 사람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세기 말 경상도 보조개골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사내를 원했던 부모는 아이를 ‘섭섭이’라는 변변치 못한 이름으로 불렀다. 글을 배우지 못하고 외출조차 제한된 ‘섭섭이’는 스승으로부터 몰래 글을 배우고 ‘보배롭다’는 뜻을 가진 ‘진(珍)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귀한 인간임을 깨달은 ‘진이’는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나 아버지는 이를 반대한다. 이에 ‘진이’는 사진신부의 길을 선택한다. 사진신부는 당시 하와이에 이주해 있는 남성 노동자들과 우편으로 사진을 교환해 혼인하는 제도였다. ‘진이’는 하와이로 가면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이끌려 타국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하와이에 ‘진이’를 기다리는 남편은 온종일 밭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사탕수수밭 노동자였다. 남편은 음주와 도박을 일삼고 툭하면 폭력을 휘둘렀다. 남편의 폭력으로 뱃속의 아이를 잃은 ‘진이’는 호놀룰루로 도망친다. 


호놀룰루에서 ‘진이’는 선량한 매춘부 ‘메이’의 도움을 받아 사창가인 이빌레이에서 매춘부들의 옷을 수선해주며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호놀룰루는 점차 국제도시로서 번성해 사창가의 호황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사창가를 향한 주위의 시선 역시 따가워졌다. 연이은 사건사고로 사창가는 결국 폐쇄되고 ‘진이’는 다시 빈민가 단칸방으로 밀려난다.

‘진이’는 파인애플 공장에서 일하다 함께 일하던 한국인 사내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이 찾아와 다시 악몽 같은 삶이 시작될까 봐, 지금의 연인이 과거를 알고 자신을 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진이’는 당시 조선 여성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혼 소송을 감행한다.

저자는 관습, 가난, 인종차별 등의 여러 시련과 싸우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진이’의 굳센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한(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섬세한 묘사와 당대의 유행가 가사, 판소리 등에 대한 서술은 저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한국의 어두운 근대사와 대비되는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 같은 정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선정 ‘2009 올해 최고의 소설’, 유명 패션 잡지 엘르(ELLE) 매거진 그랑프리 취우수상 등 유수 언론의 폭넓은 호평을 받았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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