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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당신은 가방에 무엇을 담았나요
시몬느 세번째 아트프로젝트
6월 29일까지 ‘가방 방정식’ 展

인간의 욕망 담는 가방
예술의 소재로 변주


그의 가방에는 내일 아침 먹을 식빵이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먹다 남은 호두파이 두 조각, 남성용 폼 클렌저, 그리고 묵직한 전공도서와 투자 입문서가 있다. 그의 가방 속에는 여자친구의 애정과 배려가 담겨 있고,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더해졌다.

그녀의 가방에는 열번째 스탬프가 찍힌 커피숍의 쿠폰이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본 영화 티켓 영수증 두 장이 남아 있다. 그녀의 가방 속에는 다음엔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설렘이 담겨 있고, 언젠가는 버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버리기 아까운, 극장에서의 추억도 함께 더해졌다.

그와 그녀는 한창 데이트 중이다. 하루 동안의 데이트가 끝난 후 그와 그녀의 가방은 무게가 늘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가방에 무언가를 담았다. 현실을, 미래를, 낭만을, 추억을….

▶명품 핸드백의 장인 시몬느, 가방을 예술로 변주하다=마이클 코어스, 코치, DVF(DianeVonFurstenberg) 등 세계적인 명품 핸드백을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방식으로 생산하는 핸드백 제조업체 (주)시몬느가 이번엔 ‘가방 방정식(Bag is Science)’이라는 전시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시몬느가 2015년 9월 자체 브랜드 ‘0914’의 론칭을 앞두고 아트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 중인 ‘백스테이지(Bagstage)展 by 0914’의 일환으로, ‘Bag is psychology’와 ‘Bag is history’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패션업계가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양한 실험을 선보이는 가운데, 시몬느의 ‘백스테이지’展 은 3개월마다 한번씩 총 9차례에 걸쳐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라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백정기(33), 안민정(33) 동갑내기 두 젊은 작가가 참여했다. 가방은 소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는’ 행위로 구체화하는 가장 상징적인 매개체. 회화작가 안민정은 ‘서로를 담다’라는 작품에서 그와 그녀가 가방에 담은 일상의 소소한 욕망을 무게로 도식화했다.

최고급 가죽 원단을 이용한 명품 가방을 30~50만원대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주)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경영 철학. 과장된 특별함 대신 ‘정직한 편안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시몬느의 세번째 아트프로젝트 ‘가방 방정식’전시회를 들여다봤다.

백정기 작품 ‘인간의 꽃’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백 작가는 가죽 가방에서 방부제와 색소를 추출해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방, 인간의 욕망을 담다=신사동 가로수길 ‘백스테이지(BagStage)’ 빌딩 내 ‘갤러리0914’ 전시장은 마치 과학 실험실이나 표본실을 방불케 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된 증류기와 플라스크, 벽면을 가득 채운 알 수 없는 해부도 등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장 중앙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백정기 작가의 설치작품 ‘인간의 꽃’. 백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박제화’했다. 이를테면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그 소유물은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약품처리를 하지 않은 천연가죽은 썩을 수 밖에 없다.

천연가죽은 무두질과 방부제, 색소 처리를 통해 마침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백 작가는 가죽 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역추적, 메탄올과 증류수를 특정 비율로 섞은 후 증류기를 통해 가방의 가죽에서 방부제와 색소를 추출하고 그것을 다시 ‘리시안셔스’라는 흰 꽃에 주입시켰다. 꽃은 색소로 인해 물들고 방부제로 인해 썩지도 시들지도 않는다. 결혼식 부케에 주로 쓰이는 순백의 리시안셔스, 꽃말은 ‘시들지 않는 사랑’. 백 작가는 인간의 소유욕과 미적 욕망을 대변하는 가죽 가방에서 방부제와 색소를 추출해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꽃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저항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해 냈다.

▶인간, 서로를 담다=안민정 작가는 ‘서로를 담다’라는 드로잉 작품을 통해 데이트를 마친 연인의 가방 무게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도식화했다. 수학과 회화, 정형성과 비정형성의 조화를 통해 독창적 이미지를 구축한 이 작가는 가방의 기본적인 기능인 ‘물건을 담다’라는 발상에서 한발 나아가 추억, 낭만 등 추상적인 가치들을 담는 존재로써의 가방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안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가방사용법’도 상당히 새롭다.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처럼 늘 옆에 있는 사람을 가방으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등에 업힌 연인은 등에 짊어진 무거운 백팩으로,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애인은 클러치백으로, 팔짱을 낀 애인은 토트백으로 형상화하는 식이다. 안 작가는 실제 작가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가방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가방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가방이 되기도 한다. 음식, 물, 산소 등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사랑, 행복 등 감성적인 것들도 함께 담는, 욕망 그 자체로서의 인간을 수학적인 도식을 통해 표현했다.

안 작가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잔뜩 주워 가방에 담았던 기억을 꺼내며 “가방이란 나를 닮아 있고 또한 나를 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자에게 가방이란 물건을 담는 기능 이상의 가방, 나의 스타일을 닮고, 나의 낭만과 추억을 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브랜드 핸드백이 하나도 없다는 그녀는 “가방의 브랜드나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닌, 나로 인해서 명품이 되는 가방, 나와 같이 있는 그 사람 자체가 곧 명품이 되는 것에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정직함, 솔직함, 편안함을 콘셉트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는 ‘0914’만의 가치와 맥이 닿아있는 듯했다.

가방과 예술의 콜라보레이션, 시몬느의 실험이 내년 론칭할 0914의 성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가방방정식展’은 6월 29일까지 진행되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 일요일은 7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전시 및 이벤트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0914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genuine0914)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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