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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이정아> ‘대신’ 사과하는 나라
우리 헌법에서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헌법 제66조 4항)에 속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할 의무(헌법 69조 대통령의 취임선서)’를 지닌다.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과정에서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초동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에 대한 책임은 행정수반인 대통령에게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 21일 세월호 침몰 참사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특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5분동안 ‘엄단과 처벌’만 강조하면서 원고지 28매 분량의 지시만 쏟아냈다. 국민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 책임자로서 책임있는 사과는 없었다. 정부의 부실한 재난대응 체계에 대한 책임 통감도 없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을 퇴출시키고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악재가 닥칠 때 마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와 공무원들을 질책하거나 특유의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의 화법’을 동원하고 있다.

되레 사과는 입법부 수장인 집권여당 황우여 대표가 이날 본인이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 했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는 “먼저 집권당의 대표로서 깊은 책임감을 통감하며 국민 앞에 머리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집권여당 대표가 사과하는 것은 비단 이번 뿐만 아니다.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기초선거 무공천’ 대선공약이 번복되자 오히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은 천금과도 같은 것인데 이 약속을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됐다.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짤막한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직무와 권한을 규정한 헌법 조항이 9개에 이른다. 행정부와 관련한 조항이 13개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무한대에 가까운 셈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그 과정이 길고 고통스러워도 국민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가자는 대통령 위로의 메시지가 아닐까.

이정아 정치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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