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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대수 “오랜만의 인화액 냄새, 반가웠다”
전공살려 14년만에 사진展 여는 ‘포크의 전설’ 한대수…히피 · 한국거리 등 보관필름 50만컷 전시 화려한 첫발
‘한국 포크의 거장’ 한대수(66)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진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학생은 커녕 대학생조차 흔치 않았던 시절인 60년대, 한대수는 문화의 용광로 미국 뉴욕의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암실에서 필름을 매만지던 유일한 한국인 히피(Hippie)였다. 뉴욕에서 실시간으로 히피 문화를 받아들인 그의 음악은 가죽부츠를 구겨 신고 장발을 풀어헤친 외모만큼이나 당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후대에 이르러 그의 음악은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섰다는 상찬을 받았지만, 당대에 그는 도망치듯 다시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잠시 접은 그는 미국에서 사진작가로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사진작가 한대수는 대중이 잘 모르는 그의 또 다른 인생인 셈이다.

한대수가 다음 달 7~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리서울갤러리’에서 마광수(63) 연세대 교수, 변우식(43) 팝아티스트와 함께 ‘꿈꾸는 삼총사’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연다. 한대수가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는 것은 지난 2000년 개인 사진전 ‘작은 평화’ 이후 14년 만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한대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포크 음악의 전설’ 한대수가 다음 달 7~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리서울갤러리’에서 마광수 연세대 교수, 변우식 팝아티스트와 함께‘ 꿈꾸는 삼총사’ 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연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한대수가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는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작품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한대수는 “60년대엔 미국 히피 문화를, 7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왔다”며 “보관 중인 필름이 50만 컷이 넘는데, 가능하면 일흔이 넘기 전에 정리하고 싶다. 이번 전시회는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 나라가 경제 발전에 매달리며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60년대, 한대수는 미국에서 공대와 경영학이 아닌 ‘돈이 되지 않는’ 전공으로 학업을 마친 괴짜였다. 사실 그의 첫 전공은 놀랍게도 수의학과였다.

한대수는 “조부가 수의학을 전공하면 목장을 주겠다고 제안해 뉴햄프셔주립대 수의학과에 진학했지만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며 “캠퍼스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중 사진잡지 ‘파퓰러 포토그래피’,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 등을 접하고 사진에 매력을 느껴 수의학과를 중퇴하고 1967년 사진 전문학교인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로 진학했다”고 말했다.

한대수의 조부는 학비 지원을 중단했다. 고액의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는 매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꼬박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았다.

한대수는 “60년대는 음악, 미술 등 전 분야에 걸쳐 문화가 폭발적으로 융성한 르네상스와 같은 시대였고, 사진 역시 예술의 한 분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며 “지금도 뉴욕에서 유명한 식당인 ‘세렌디피티 3’에서 일하며 비틀스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팝스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수많은 명사들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이 같은 경험은 고스란히 내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줬다”고 회상했다.

한대수의 사진작가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뉴욕의 ‘컬러 하우스’ ‘크로마 카피’ ‘스피드 그래픽스’ 등의 스튜디오에서 광고사진작가로 근무했다. 한때 그는 코리아헤럴드에서 사진부 기자로 일하며 (주)헤럴드와도 밀접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또한 그는 세계적인 건축사진가 너대니얼 리버만(Nathaniel Lieberman)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베스트셀러 건축사진집 ‘맨해튼 라이트스케이프(Manhattan Lightscape)’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대수는 “예전에는 사진을 배우려면 렌즈와 카메라의 특성, 현상과 인화, 모델을 다루는 방법 등 다양한 것을 익혀야 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세상”이라며 “필름회사 코닥은 우리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지만 지난 2012년 파산 신청을 했다. 지금 이 나이에 나는 젊은이들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돈나와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무리 많은 영화에 출연했어도 그들을 배우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나 역시 뮤지션과 사진작가 둘 다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느끼고 바라봐줬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한대수는 이번 사진전에 초심을 담은 15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중 7점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한대수는 뉴욕으로 건너가 암실에서 직접 사진을 인화했다. 그는 오랜만에 뉴욕에서 맡는 현상액과 인화액의 냄새가 반가웠다며 사진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역설했다.

한대수는 “사진은 순간이다. 지지고 볶고 찐빵을 만들든 말든 사진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며 “1948년 영도다리, 2014년도 인사동 사진 한 장은 역사를 말해준다. 이는 어느 미술과 조각과 문학이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진은 미술을 모방하면 안 된다. 사진은 사진, 미술은 미술”이라며 “순간의 표정에는 그 사회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나는 이스탄불의 어린 소녀의 눈물, 모래내 시장의 할머니 손의 주름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대수는 지난해 핵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담은 싱글 ‘누크 미 베이비(Nuke Me Bady)’를 발표하고 최근 김광석 추모 앨범에 참여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르는 등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한대수는 “이제 주변에 내가 앨범을 만들겠다면 발 벗고 나서줄 실력파 음악인들이 너무 많아 고민이 즐겁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새로운 정규 앨범으로 돌아올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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