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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라이프] "미술 작품 전율 느껴진다면 주저말고 잡아라”
한국 대표 슈퍼컬렉터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
앤디 워홀 등 세계적 작가들 작품 수집
35년간 3700여점 모아
스타작가 한발 앞서 알아보고
대표작 위주로 사들여
천안 · 서울 이어 8월엔 상하이에 갤러리 오픈

오랜 꿈이었던 미술관 디렉터로 제3의 도전
현대건축 상징 ‘공간’ 사옥 뮤지엄으로 재탄생
10월엔 제주도 낡은 건물 개조한 미술관 개관


서울 사는 사람이 차(車)를 몰고, 천안 아라리오 광장에 당도하면 모두 세번 놀란다고 한다. 처음엔 특이하고 거대한 미술품들이 광장에 잔뜩 놓여있는 것에 놀라고, 그래서 ‘아직 서울이겠거니’하는데 천안이라는 사실에 놀란다는 것이다. 세번째론 광장의 작품(26점)이 모두 진품이라는 사실에 놀란다고 한다. 데미안 허스트, 키스 해링, 아르망 등 작품 하나에 수억~백억대인 조각들이 길거리에 놓여있으니 놀랄 수밖에. 

서울 삼청동에 새로 오픈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한 김창일 회장. 뒤로 보이는 조각은 그가 열렬히 좋아하는 김인배의 작품이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천안시 신부동의 6만6000㎡(2만평) 부지에 ‘아라리오 스몰시티’라는 아트월드를 만든 이는 아라리오그룹의 김창일 회장(63)이다. 천안 시외·고속버스터미널과 백화점(신세계 충청점), 멀티플렉스, 갤러리를 보유한 그는 사실 재벌그룹 오너는 아니다. 연매출이래야 35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아트 컬렉션에 있어선 국내를 대표한다. 아니, 세계적인 슈퍼리치들과 견줬을 때도 별반 손색이 없다. 지난 35년간 모은 3700여점은 규모도 규모지만, 질에 있어서도 만만찮다. 때문에 미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를 비롯해 ‘아트리뷰’ 등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컬렉터’에 그의 이름을 매년 올리고 있다. 

자신의 피를 뽑아 냉동조각을 만든 마크 퀸의 ‘셀프(self)’. 오는 9월‘ 공간’사옥에 설치된다.

장 미셸 바스키아, 신디 셔먼, 앤디 워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한 그는 국내외가 주목하는 ‘파워 컬렉터’다. 남보다 일찍 스타작가를 알아보고, 대표작 위주로 사들인 게 주효했다. 그런 그가 올들어 ‘제3의 도전’에 나섰다. 어머니로부터 반강제로 떠안았던 천안의 빚덩이 시외버스터미널을 중견기업으로 키운 사업가이자, 현대미술에 빠져 아트컬렉터로(또 작가로) 세계를 숨가쁘게 누볐던 이 남자는 최종 꿈을 향해 발걸음을 성큼 뗐다.

▶미술관 디렉터, 그것은 나의 ‘운명’= 요즘 김 회장의 꿈은 ‘미술관 디렉터’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목표다. 김 회장은 “미술관의 확실한 방향을 세우느라 좀 늦어졌다. 이제 시작이다. 버림받은 공간, 을씨년스런 폐허에 혁신적인 미술을 선보이는 게 컨셉”이라고 했다.

인도 출신의 스타작가 수보드굽타의 ‘Everything is Inside’. 굽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우선 서울 원서동의 공간(空間) 사옥을 9월 1일 뮤지엄으로 개관한다. 또 10월에는 제주시에 3개의 미술관을 오픈한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한국 현대건축의 상징인 ‘공간’ 사옥을 전격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천재건축가 김수근이 1971년 설계한 ‘공간’사옥은 건물주의 부도로 경매에 부쳐졌으나 유찰됐다. 제주서 이 소식을 접한 김 회장은 ‘아, 그런 기막힌 건물이 유찰되다니. 이건 필시 나의 운명이다’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곧바로 매입을 결정했다. 매입가는 150억원. 당초 H그룹이 인수를 검토하다가 접었던 건물을, 불같은 성격의 김회장이 휘몰아치듯 인수한 것.

데미안 허스트의 조각 ‘자선(Ch ari t y)’. 허스트의 ‘찬가(Hymm)’와 함께 아라리오광장에 놓여있다. 각 1000만달러(100억원)를 호가한다.

김 회장은 “내가 현대미술 쪽이니까 ‘공간’을 망가뜨릴까봐 걱정한다고 들었다”며 “그러나 그건 나를 잘 모르는 거다. 국내외 미술현장을 많이 둘러본 사람으로써, 역사적 자취가 있는 곳이야말로 현대미술을 담기에 최적임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수근의 모든 것과, ‘공간’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갈 것이다. 30개에 달하는 ‘공간’의 크고 작은 방에 바바라 크루거, 네오 라흐 등 다양한 작품들을 들여놓을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밝혔다. 

키스 해링의‘ 줄리아’. 춤추는 댄서를 표현한 금속조각으로 시가는 약 600만달러(60억원).

제주 프로젝트 또한 그가 직접 디렉팅 중이다. 과거 영화관이었으나 이제는 폐허가 된 제주시 탑동시네마를 비롯해, 여관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문클리닉, 자전거수리점이었던 탑동바이크는 가을이면 색다른 미술관이 된다. 김 회장은 “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낡은 건물의 흔적을 최대한 유지하고, 바닥과 조명만 손보고 있다. 제주의 검은 돌담 밑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미술관들이 쑥쑥 자라나 ‘올레’에 이어 제주의 ‘찾고싶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탑동시네마에는 앤디 워홀의 ‘마릴린’ 실크스크린 10점 풀세트(작품가 200만달러)와 수보드 굽타의 가로 20m 크기 배 작품, 장환(중국)의 쇠가죽 부처를 설치할 참이다. 동문클리닉에는 동일본 쓰나미 때 떠내려온 문짝을 집적한 아오노 후미아키의 작품을 들여놓게 된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중 대표작인‘마릴린’(91x91cm). 김 회장은 마릴린 풀세트(10점)를 보유 중이다.

김 회장은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관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훌륭한 미술관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에 아라리오가 조촐하지만 도전적인 미술관으로 가세하고 싶다”며 “그런데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느니 하는 말은 정말 싫다. 내 열정이 나를 여기까지 몰고왔을 뿐”이라고 했다. 뮤지엄 디렉터는 자신의 운명이요, 직업이라는 얘기다.

▶3700점에 이르는 컬렉션, 그 골갱이는?= 김 회장의 컬렉션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는 미술계의 큰 관심거리다. 일부는 조각공원에 설치돼 있고, 일부는 전시를 통해 공개됐으나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천안 아라리오광장에 설치된 코헤이 나와의 대형조각 ‘매니폴드(Mainfold)’. 높이 13m. 제작에 50억원이 투입됐다.

김회장은 “많은 이들이 내 컬렉션을 궁금해한다. 우선 ‘공간’사옥을 통해 내가 특별히 아끼는 신디 셔먼,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공개할 것이다. 제주 미술관에는 야생의 거친 작품을 내걸 것”이라고 했다. 그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작품당 수십억을 호가하는 장 미셸 바스키아를 비롯해 키스 해링, 데미안 허스트, 채프먼형제, 사이 톰블리, 루퍼츠, 임멘도르프, 모나하툼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특히 인도 출신의 유명작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은 대표작을 중심으로 20점을 보유 중이다. 그가 스타로 뜨기 훨씬 전에 수집했기에 가능했다.

지난 2005년에 매입한 시그마 폴케의 가로 5m 크기의 회화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과 ‘knight(기사)’도 눈길을 끈다. 당시 폴케의 다른 작품은 30만달러였는데, 이 두 작품은 곱절인 60만달러여서 모두들 비싸다고 외면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 개척시대의 상징인 카우보이를 표현한 이들 작품에 매료돼 단박에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얼마 전 외국의 한 딜러로부터 ‘600만달러에 팔라’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팔지 않았다. 

시그마 폴케의 회화 ‘서부에서 제일 빠른 총’. 10년 전 60만달러에 수집했는데 현재 10배 넘게 올랐다.

김 회장은 천안과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8월에는 상하이에도 갤러리를 연다. 삼성미술관 리움 등이 고객이다. 리움은 수보드 굽타의 대형 조각과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사슴 조각 등을 매입했다. 그는 “영국의 파워컬렉터 사치 외에는 아무도 데미안 허스트를 눈여겨보지 않을 때 그의 대형조각 ‘찬가‘를 200만달러에 샀다. ‘자선’이라는 조각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지금 두 조각은 1000만달러를 호가한다. 팔라는 제안이 끊이지 않지만 팔 수 없다. 그건 이미 천안 시민의 것이니까”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에게 쪽집게처럼 주요작품을 집어내는 비결을 묻자 “사실 나도 수업료 많이 냈다. 3700점 중 절반은 미흡한 수준이다. 초보시절엔 가짜도 샀다. 나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한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많은 걸 깨우쳤다. 그러니 실패도 잘 해야 한다”며 ”나를 전율케하는 작품을 만나면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단 예쁜 작품, 장식적인 작품은 미래가 없다. 압도적인 작품을 골라야 한다”고 귀뜸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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