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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 김석동> 크림반도와 기마유목민의 역사이야기
흉노 · 돌궐 · 몽골 등 지배하던 땅
지중해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
크림전쟁이후 유럽 · 러 다시 충돌
한반도 외침역사와 비슷 ‘오버랩’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남쪽에서 흑해 쪽으로 다이아몬드 모습으로 돌출해있는 반도다. 면적은 2만5600㎢로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한 크기다. 이 땅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크림자치공화국이 다스렸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연방의 해체에 따라 독립한 국가이며 크림반도는 구소련 영토였다가 분리된 것이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함대사령부가 있고, 그 동쪽 50㎞에는 한반도분단 운명이 잉태된 국제회담이 열린 휴양도시 얄타가 있다.

우크라이나 면적의 4%, 러시아의 0.15%에 불과한 이 반도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과 친러시아 세력간 분쟁사태가 그것이다. 지난 3월 크림자치공화국이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과 러시아 귀속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재빨리 자국 영토로 합병해버렸다. 서방국가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유라시아 대초원은 만주에서 크림반도 일대까지 이르는 동서 8000㎞ 지역이다. 전형적인 건조한 스텝기후지역으로 역사적으로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 등 기마유목민족이 오랜 기간 활동해온 땅이다.

크림반도의 선주민은 키메르인으로 알려졌으나 BC 7~8세기경 기마유목민 ‘스키타이’가 흑해북안과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스키타이는 이후 BC 5세기경 건설된 고대그리스의 도시국가 보스포루스왕국까지 지배하고 4세기까지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사르마트에 멸망당했다.

BC 2세기 후반 로마세력이 진출하면서 이 지역의 보스포루스 왕국은 다시 로마의 보호국이 됐다. 이후 로마와 동로마의 세력권 안에 있었으나 3세기경부터 흑해북안에 여러 세력과 민족이 진입하는 와중에 동고트족 세력이 크림반도 일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무렵 흉노의 후예 훈족의 기마군단이 물밀듯 서방세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돈강, 드네프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진격해 375년 동고트족을 격파, 크림반도를 차지하고 서진을 계속했다. 9세기 이후 11세기초까지는 다시 비잔틴제국의 세력권에 있었으나, 10세기 중반이후 슬라브족이 흑해북안에 진출하면서 러시아의 영향이 커졌다.

13세기초에는 징기스칸의 몽골군이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이후 몽골의 지배 아래서 징키스칸 맏아들 주치가 세운 ‘킵차크한국’의 속령이 됐다. 징기스칸 후예로 티무르제국을 건설한 티무르도 1395년 이곳을 점령했다. 킵차크한국의 분열기인 1441년 아시아 유목민 타타르족이 크림반도 일대에 ‘크림칸국’을 세웠는데, 1475년 돌궐의 후예 오스만 제국이 크림반도를 정복함에 따라 크림칸국은 200년이상 종속했다.

러시아는 피오트르 대제 때부터 끊임없이 흑해 진출을 모색했다. 러시아는 1ㆍ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1792)승리로 크림반도를 병합시켰다. 제 1~2차 세계대전시 독일이 한때 점령하기도 했으나 종전 후 러시아 땅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흑해의 크림반도는 스키타이 이래로 기마유목민이 오랜 기간 지배한 땅이나 러시아의 끈질긴 남하정책과 부딪치면서 운명이 엇갈려온 지역이다. 크림반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얼지 않는 항구를 가질 수 있는데다 지중해와 연결되어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혀 왔다. 유럽연합 세력이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전쟁이 바로 크림전쟁(1853~1856)이며 그 유명한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도 이때 활약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어 두 세력이 다시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크림반도에 두고 지중해의 미국 6함대와 대치하는 등, 이 지역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운명이 바뀌어 온 크림반도는 이렇게 우리와도 관련이 깊은 기마유목민과 오랜 인연을 가진 땅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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