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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의 저 별, 우리의 아픔을 지켜본 ‘벗’…한국미술관 ‘별이 되다’ 展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게 언제였든가. 오래 전 여행지에서 바라봤던 기억만 맴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별을 차분히 헤아려볼 여유도 주지않은채 팍팍하게 치닫는다.

이런 우리들에게 여기 열세명의 아티스트가 속삭인다. 오늘도 말없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에 품었던 환상을 다시 꿈꿔보라고.

경기도 용인의 한국미술관(관장 안민연, 김윤순)이 ‘별이 되다’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을 꾸몄다.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분야에서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회화 부문에선 강용대 강운 기대용 법관스님 이민혁 황주리가, 조각에선 손정희 이효문 전경선이 초대됐다. 미디어 아트 부문에선 박상화 이경호 이이남 임영선이 출품했다. 모두 꾸준한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다져가는 작가들이다. 또 광주,전주 등 지역 작가가 다수 초대된 것도 눈에 띈다. 

손정희 안드로메다, 세라믹 조각, 35x31x40cm, 2014 [사진=김명섭 기자]

그런데 이 전시의 표제어 ‘별이 되다’는 마냥 낭만적이진 않다. 영어부제를 살펴보니 ‘Scars became Stars’이다. ‘상처가 별이 되다’라니 무슨 의미일까?

이 부제는 뭉툭하니 못생긴 쇳덩이가 끝없는 담금질에 의해 유용한 도구가 되듯, 꽃이 제 몸을 떨궈야 비로소 잎이 나고 열매를 맺듯, 인간 또한 상처를 겪어야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품고 있다.

오늘 저 하늘에서 찬란히 반짝이는 별들도 우리 모두의 상처가 응축된 것이라는 가정 아래 작가들은 저마다 신작을 제작했다. 따라서 전시에는 끝없는 방황과 고뇌, 아픔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인 끝에 직조된 작품들이 모였다. 비록 손으로 잡을 순 없으나, 하늘의 저 무수한 별들은 우리의 지난 궤적을, 아픈 상처와 덤덤히 지켜본 ‘벗’임을 말해주는 작업들이다. 

이민혁 사람들의 정원-거리. 80x116cm.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 한국미술관]

한지에 먹물을 검게 들이고 그 위에 단청으로 아름다운 성좌를 그린 고(故) 강용대의 회화는 처연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강용대는 평생 별만 그리다가 마흔다섯에 세상을 떴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기대용의 추상은 그 자체가 ‘마음의 별’이자 ‘희망의 별’이다. 또 법관스님의 붉은 추상은 밤하늘에 명멸하는 별들이 들려주는 하모니다.

반면에 이민혁의 그림은 꿈틀대는 듯한 번뇌로 가득차 있다. 땅 위에서 터져나오는 인간 군상의 절규와 갈망을 형상화한 그림은 별무리로 다가온다. 하늘의 구름을 그려온 화가 강운은 푸른 강물을 띠처럼 표현한 싱그런 회화를 출품했다. 치유적 그림이다.

국제무대에서 호평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다수 초대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이이남은 반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에’에 움직임을 넣어 5분짜리 영상을 제작했다. 어두운 밤, 별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에서 출발한 영상은 새벽과 아침을 맞으며 서서히 달라진다. 이경호는 한편의 몽환적인 예술영화를 내놓았다. 안개 낀 황량한 벌판에서 작가는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온갖 차량이 굉음을 울리며 내지르는 ‘속도’ 앞에서 그는 인간의 운명을 떠올린다. 

강운 물 위를 긋다. 종이 위에 담채 135x207cm. [사진제공= 한국미술관]

박상화는 여러 겹의 투명스크린에 회오리치는 성운의 이미지를 투사해 스펙타클한 세계를 창출했고, 임영선은 우주의 단면을 장대한 비디오 영상으로 표현했다.

조각 섹션에서도 흥미로운 작업들이 여럿 나왔다. 이효문은 느티나무 참죽나무로 별의 형상을 만들어냈고, 전경선은 자연과 기계의 만남을 통해 초인적 존재를 묘사했다.

도조 형식을 빌어 입체작업을 하는 손정희는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응축해낸 작품을 출품했다. 반인반수, 또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인물조각은 인간의 심연을 흥미롭게 꿰뚫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태양신’으로 불리는 ‘Helios’를 손정희는 황금빛 머릿채를 뽐내는 여인으로 응축해냈다. 비록 모든 행성을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게 만드는 태양신이지만 웅크린 그녀는 외롭고 쓸쓸하다.

박상화 바벨탑, 싱글채널 비디오, 수제스크린. 2013[사진제공= 한국미술관]

역시 신화 속 인물인 ‘사이렌’을 표현한 조각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닭의 형상이다. 매끄런 인간의 두팔과는 달리, 닭의 발톱이 강조된 두다리는 섬뜩하리만치 높이 솟구쳐 있다. 터질 듯한 자신의 속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사회 규범에 맞는 삶을 요구받는 여성들의 이중적 면모를 독특하면서도 재기발랄하게 비틀어낸 작품이다.

손정희는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깊은 속내를 표현한 신작도 출품했다. 길고 긴 머릿채를 늘어뜨린 여성은 납작 엎드려 있지만 곧 허공으로 점프할 태세다. 커다란 날개를 단채 비상을 열망하는 여성 조각도 짝을 이루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 동시에, 동물적 본능도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그의 조각은 사회적 프로토콜에 순응하느라 자유의지와 일탈을 억누르고 있는 현대인의 내면을 호소력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경호_Become a Star!Thinking about waiting a Bus! [사진제공=한국미술관]

기획자인 임수미 독립 큐레이터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별은 우리에게 더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이태백이 노래하던 달도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 속 환상과 소망을 되지펴야 한다. 예술이 그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계속된다. 031)283-6418

yrlee@heraldcorp.com

법관스님 禪(선), 석채, 163x130cm, 2013[사진제공= 한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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