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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의 아트앤아트> 얼룩진 상처, 내게로 오니 ‘별’ 이 되었다
한국미술관 ‘별이 되다’ 展 개막…손정희 · 황주리 등 13인 작가 참여
아픈 상처의 결정체 ‘별’
작가들 저마다의 아픔 녹여내

손정희 인간 - 닭 반인반수 조각
인간의 억압된 내면 강렬한 응축
이경호 · 이이남 미디어아트도 눈길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게 언제였던가. 도시에서의 삶은 별을 헤아려볼 여유조차 없이 팍팍하게 치닫는다.

여기 열세명의 아티스트가 그런 우리에게 속삭인다. 저 멀리 별을 바라보며, 마음에 품었던 환상을 다시 꿈꿔보라고.

경기도 용인의 한국미술관(관장 안민연, 김윤순)이 ‘별이 되다’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을 꾸몄다.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회화 부문에선 강용대 강운 기대용 법관스님 이민혁 황주리가, 조각에선 손정희 이효문 전경선이 초대됐다. 미디어아트 부문에선 박상화 이경호 이이남 임영선이 출품했다. 모두 꾸준한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다져가는 작가들이다. 또 광주, 전주 등 지역작가가 다수 초대된 것도 눈에 띈다. 

이이남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LED-TV

그런데 이 전시의 표제어 ‘별이 되다’는 마냥 낭만적이진 않다. 영어부제를 살펴보니 ‘Scars became Stars’이다. ‘상처가 별이 되다’니 무슨 뜻일까.

이 부제는 뭉툭하니 못생긴 쇳덩이가 끝없는 담금질을 거쳐 유용한 도구가 되듯, 꽃이 제 몸을 떨궈야 잎이 나고 열매를 맺듯, 인간 또한 상처를 겪어야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품고 있다. 오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우리 모두의 ‘아픈 상처의 결정체’라는 가정 아래, 작가들은 저마다 신작을 제작했다. 전시에는 끝없는 방황과 고뇌,아픔과 외로움을 켜켜이 녹여낸 작품들이 모였다.

한지에 먹물을 들이고, 그 위에 오색의 단청으로 성좌를 그린 고(故) 강용대의 회화는 처연하면서도 은은하다. 강용대는 평생 별만 그리다가 마흔다섯에 세상을 떴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기대용의 추상은 그 자체가 ‘마음의 별’이자 ‘희망의 별’이다. 법관스님의 붉은 추상은 밤하늘에 명멸하는 별들이 들려주는 하모니다. 반면에 이민혁의 그림은 꿈틀대는 번뇌로 가득차 있다. 땅 위에서 터져나오는 인간군상의 절규를 형상화한 그림은 폭발하는 유성처럼 보인다. 

이효문 ‘별을 이야기 하다’, 느티나무 참죽나무. 140 x140x60cm

국제무대에서 호평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다수 초대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이이남은 반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에’에 움직임을 넣어 5분짜리 영상을 제작했다. 어두운 밤, 별들이 빙글빙글 동심원을 그리며 찬란히 빛나는 장면에서 출발한 영상은 새벽과 아침을 맞으며 붉게 타오른다. 이경호는 한편의 몽환적인 예술영화를 내놓았다. 안개 낀 황량한 들판에서 작가는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온갖 차량이 굉음을 울리며 내지르는 ‘속도’ 앞에서 그는 인간의 숙명을 돌아본다.

조각 섹션에서도 흥미로운 작업들이 여럿 나왔다. 이효문은 느티나무, 참죽나무로 커다란 별을 만들어냈고, 전경선은 자연과 기계의 만남을 통해 초인의 존재를 묘사했다.

도조 형식을 빌어 입체작업을 하는 손정희는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응축해낸 작품을 출품했다. 반인반수, 또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인물조각은 인간의 심연을 꿰뚫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태양신’이라 불리는 ‘Helios’를 손정희는 탐스런 황금머릿채의 여인으로 형상화했다. 태양계의 ‘주인공’이지만 웅크린 그녀는 외롭고 쓸쓸하다.

손정희의 세라믹 조각 ‘Siren’.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 동시에, 동물적 본능도 지니고 있음을 반인반수 형상에 빗대 시니컬하게 표현했다. 40x32x23cm

신화 속 또다른 존재인 ‘사이렌’을 표현한 조각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닭의 형상이다. 매끄런 인간의 두팔과는 달리, 닭의 발톱이 강조된 두다리는 섬뜩하게 솟구쳐 있다. 사회적 규범에 맞춰 살 것을 요구받는 탓에, 끓어오르는 속마음을 꾹꾹 누르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중적 면모를 독특하면서도 재기발랄하게 비틀어낸 작품이다.

손정희는 신작도 출품했다. 길고 긴 머릿채를 늘어뜨린 여성은 납작 엎드려 있지만 곧 점프할 태세다. 그 옆에는 커다란 날개를 단채 비상을 꿈꾸는 조각이 짝을 이루고 있다. 그의 조각은 사회적 프로토콜에 순응하느라 자유의지와 일탈을 억누르고 있는 인간들을 호소력있게 표현하고 있다.

기획자인 임수미 독립 큐레이터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별은 우리에게 더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 속에 환상과 상상력을 지펴야 한다. 예술은 그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yrlee@heraldcorp.com

[사진제공=한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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