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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방황하는 탈북자에게 돌을 던지는가
수치
/전수찬 지음
/창비
2004년 ‘어느덧 일주일’로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찬은 인지부조화의 상태에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민을 많이 다루어왔다.

‘수치’ 역시 그렇다. 수치스럽다고 비난할 자,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자 구분을 누가했는가, 힐난하는 자 그는 수치스럽지 않은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가 수치스런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는가. 작가는 밀도있는 시선이 다시 주목받는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한 ‘원길’은 몽골사막을 건너다 쓰러진 아내를 남겨둔 채 딸을 업고 돌아섰다. 이후 남한에 온 그는 같은 처지의 ‘영남’과 ‘동백’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살아남아 생을 이어간다는 수치심에 물들어 있다. ‘동백’은 스스로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손가락질 받는 것으로 속죄하려 하지만 죄책감을 덜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영남’은 새 생활을 시작하겠다며 올림픽을 유치한 지방도시로 이사를 가지만 그곳에서도 삶과 죽음 사이의 처절한 번민은 계속된다. 여기서 작가는 주인공들의 겪고 있는 내적 고통을 고도로 자본화된 한국사회, 그 안에서도 물신성이 첨예화된 사건 하나에 맞붙인다. ‘영남’이 이사 간 도시의 올림픽 선수촌 공사현장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유골이 다량 출토된다.

민간인 학살범이 미군이냐 인민군이냐를 두고 진실공방이 격화되고, 정부는 인민군의 범행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는다. 정부의 판단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마을로 몰려와 공사를 중단하고 진실을 규명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길 바라는 주민들과 심한 갈등을 빚는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남한 사회의 소수자이자 퇴락한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제삼자로 자리한다. 작가는 그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배반하는지 통렬하게 폭로한다. 욕망 앞에서 최소한의 윤리조차 내던지는 각박한 사회상을 고발한 작가는 우리가 아직도 도덕과 수치심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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