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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리빙 피플] “커피찌꺼기는 ‘거름’ 의 꿈”
친환경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大賞…‘거름’ 하덕천 대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원두의 80%…
일반토양에 찌꺼기 20%이상 배합
식물 성장 더딘만큼 잡초도 덜 자라
벽면 · 옥상녹화에 안성맞춤

전문성 · 실력 인정받는게 제1 과제
도시녹화 뚜렷한 발자취 남겨야죠


“원두를 볶아 20%의 커피 성분을 뽑아내면 나머지 80%는 커피 찌꺼기가 되어 버려집니다. 콩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사회적기업 ‘거름’의 하덕천 대표는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던 지인이 엄청난 양의 커피 찌꺼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커피 찌꺼기 위에 식물을 길러보면 어떨까’라고.

당장 토양에 발효한 커피 찌꺼기를 섞어 식물을 직접 길러봤다. 역시 식물은 싱싱하게 잘 자라났다. 그런데 커피 찌꺼기 배합률 20%를 넘겼더니 식물의 성장이 크게 더뎌졌다. 벽면 녹화, 옥상 녹화를 전문으로 하는 그는 식물의 느린 성장을 오히려 반겼다. 식물과 함께 잡초도 그만큼 덜 자라나기 때문이다. 커피 찌꺼기로 만드는 ‘거름’의 꿈은 그렇게 태어났다.

‘거름’은 최근 이 커피 찌꺼기 흙에 대해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작년에는 한화의 ‘친환경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사업 자금과 상담을 지원받았다. 하 대표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사회적기업 ‘거름’은 청주시 ‘두꺼비 살리기 운동’에서 출발했다. 청주시 산남 3지구 택지개발 과정에서 두꺼비와 자연을 보호하자는 환경운동이다. 

커피 찌꺼기로 인공 토양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거름’의 하덕천 대표. 사람과 자연의 공존은 이렇듯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서울에서 10여년 간 IT업체를 다니던 하 대표도 학교 동창들, 고향 주민들과 함께 두꺼비 살리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끈질긴 싸움 끝에 하 대표와 청주 시민단체들은 도심 한가운데 생태공원을 만들어 냈다. 이 공원 관리를 위해 2007년 사단법인 ‘두꺼비 친구들’을 설립했다. 하 대표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2011년 ‘두꺼비친구들 사업단 거름’을 거쳐 지난해 전문가 몇명과 함께 독립해 ‘주식회사 거름’을 꾸렸다.

생태 공원을 관리하던 ‘거름’은 이제 도시 내 자연을 복원하는 녹지 조성을 주로 하고 있다. 환경 운동에서 출발한 만큼 도시와 농촌의 생태 가치를 키우는 사업을 모색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한국도시녹화’와 기술이전 제휴를 맺고 옥외 녹화 사업을 이어왔다.

‘거름’은 투박하지만 자연적인 원목 가구도 직접 디자인해서 생산하고 있다. 하 대표는 “한겨울과 한여름에는 공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책꽂이에 옥상 녹화에 쓰이는 식물을 넣어 키우는 방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최근 자연주의 인테리어 유행을 타고 거름이 ‘풀담’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만든 가구들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풀담’ 가구에도 커피 찌꺼기로 만든 흙이 쓰인다.

그는 화분과 가구, 소규모 벽면녹화 외에도 커피 찌꺼기를 대형 옥상 녹화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물 증발량이 많은 옥상 녹화에서 커피 기름막이 수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 대표는 “오랜 실험을 거쳐 시제품 단계에 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필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올 봄에 ‘거름’이 조성하는 녹화부지 일부에 커피 찌꺼기 토양을 적용할 계획이다. 커피 찌꺼기가 많아지면 커피 입자가 물 구멍을 막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옥상녹화에 도입된 후 커피 찌꺼기의 부피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앞으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은 인근 커피 전문점 ‘할리스’와 ‘춤추는 북카페’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로 충당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면 대규모 커피 찌꺼기 조달처를 찾아내야 한다. 일회용 믹스커피 공장이나 대형 커피전문점으로부터 커피 찌꺼기를 공급받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커피 생산업체들도 커피 찌꺼기를 폐기 처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서로 상생하는 구조다. 하 대표는 “우리가 커피 찌꺼기를 처리해 준다는 명목으로 소정의 돈을 받을 수도 있다. 그 돈을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거름’이 지속가능한 사회 뿐만 아니라, 도시 녹화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는 꿈을 꾸고 있다.

하 대표는 “사회적기업에 많은 분들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과연 사회적기업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문성과 실력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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