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절기
4월의 절기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가 있다. 먼저 청명(올해는 4월5일)은 이때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진다는 의미로, 양력 4월 5~6일 쯤 든다. 청명과 한식, 그리고 식목일이 자주 겹치듯, 이때는 온갖 초목이 새로 자라기 시작한다. 천지간에 양기가 왕성해지는 때라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산천초목이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전원의 4월 풍경 |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비로소 봄 밭갈이를 한다. 농촌에서는 이 무렵 논밭의 가래질, 논 밭둑 다지기, 보리밭 매기, 농작물 파종 등 바쁜 농사철에 들어간다.
청명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을 전후해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라 하여 담근 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한다.
청명 당일이나 다음날이 되는 한식(올해는 4월6일)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명칭인데, 예로부터 설·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혔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술과 과일을 마련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했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또 손 없는 날로 여겨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고 묘 둘레에 나무를 심고 이장을 한다.
한식은 청명과 마찬가지로 한해 농사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데, 이 무렵 볍씨를 담근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열매가 잘 열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 넣는 ‘과일나무 장가보내기’행사도 있었다.
또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곡우(올해는 4월20일)는 이름 그대로 곡식을 깨우는 비로, 양력으로는 4월 20일경부터 보름간을 말한다.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다. 그래서 호남, 영남과 강원도 지방에서는 이름난 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가는 풍습이 있었다. 곡우물은 산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내었을 때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몸에 좋다고 하여 받아뒀다가 약수로 쓰기도 했다.
■식목과 조경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국민 식수에 의한 애림 의식을 높이고, 산림의 자원화를 꾀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이 식목일은 청명과 자주 겹쳐 나무심기에 적합했지만, 지금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강원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 지역에서는 3월말이면 나무심기가 끝난다.
강원도 홍천군 산골에 사는 필자 가족은 3월 중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집 주변 조경 및 과일나무 심기를 한다. 매년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이맘때면 장미, 목련 등 꽃나무와 사과, 배, 복숭아, 대추 등 과일나무를 주로 사다 심는다.
귀농 이후 처음 맞은 2011년 식목일 전후해서는 제법 많은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었지만, 대부분 실패를 맛봤다. 당시 심은 소나무 네 그루 중 두 그루가 죽었고, ‘봄의 화신’인 연분홍 진달래는 일곱 그루를 심었지만 달랑 두 그루만 남았다. 집 울타리를 겸해서 심은 두릅도 이십여 그루 가운데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절반도 채 안 된다. 강원 산골의 겨울이 몹시 추워서 인지 ‘꽃의 여왕’ 장미는 3분의 1만 살아남았는데, 그나마도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다. ‘순백의 봄’을 연출하는 목련은 다섯 그루 심었지만 이듬해 모두 고사했다.
봄 햇살이 투명되어 황금빛으로 변한 계곡물과 돌 |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고 심은 과일나무 또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앵두나무(두 그루)와 복숭아나무(열 그루), 배나무(한 그루), 머루(세 그루)는 전멸했고, 대추나무(두 그루)와 밤나무(세 그루)는 각 한 그루만 남아있다. 특히 소백산에서 가지를 얻어와 밭 가장자리 개울 주변에 수십 개를 삽목한 다래나무의 경우 모조리 전멸했다. 그나마 자두(두 그루)와 보리수(두 그루), 포도(세 그루)가 건재하고 사과나무도 여섯 그루 가운데 네 그루가 잘 크고 있어 다소 위안이 된다.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기르면서 깨달은 점은 애초 토심을 보강한 뒤 심지 않으면 나무도 고생이고, 사람도 고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강원 산간지역은 겨울이 몹시 춥기 때문에 만반의 월동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동사하는 사례가 빈발한다.
전원생활에 있어 조경은 한꺼번에 돈을 들여 조성하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두고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것이 좋다. 그 과정을 즐기다보면 손때 묻은 예쁘고 소박한 정원이 꾸며지고, 자연스레 가족 사랑도 깊어진다.
■4월의 전원생활
4월이 되면 입춘에 돋아나기 시작한 봄나물이 쇠고 진달래꽃이 만발한다. 한낮엔 여름처럼 무덥다가 새벽엔 서리가 내리니 이 흐름에 맞추지 않으면 몸에 탈이 나기 쉽다. 때 이르게 나온 싹들이 서리를 맞으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
마당에는 살구, 자두, 앵두꽃이 피고.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산에는 진달래 등 봄꽃이 피어난다. 양지꽃, 민들레꽃이 땅에 엎드려 피어나고 갖가지 제비꽃이 곳곳에 피어 있다. 논둑에는 할미꽃이 피고, 알에서 나온 병아리들이 햇살 좋은 마당을 종종거리며 다닌다. 날아다니는 나비를 좇아 아이들은 온 벌판을 쏘다니고, 어른들은 논과 밭에서 바삐 일손을 놀린다.
우리나라 토종인 하얀꽃 민들레 |
복숭아꽃이 방긋이 웃고 조팝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하늘에서 곡식 싹을 틔우는 비가 내리니 즉, 곡우다. 산에는 붓꽃이, 들에는 봄맞이꽃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새들은 활기차게 날아다니고, 개구리는 개골개골 힘차게 울어댄다.
곡우가 내리고 나면 쭉쭉 뻗은 낙엽송이 연두색을 띠고, 산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으름꽃, 둥굴레 꽃이 자태를 뽐내고 서서히 산 전체가 녹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어느덧 사과나무와 배나무에도 꽃이 핀다. 꽃샘추위가 여전한 강원 산간지역의 경우 하순이 되어서야 각종 꽃나무와 과일나무의 싹이 나온다. 싹트는 뭇 생명들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신비한 체험이다.
4월의 자연이 주는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 가족은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서도 왕고들빼기와 민들레 캐기, 쑥, 개망초 뜯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때는 그야말로 망중한이다. 흔한 잡초로 여겨지는 개망초도 여린 잎을 뜯어 나물로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쑥은 다양한 먹거리 재료이자, 잘 말려서 훈증재료로도 쓴다.
봄쑥 |
산에 가도 곳곳에 자연 먹거리가 널려있다. 화살나무, 다래나무, 산뽕나무 등의 여린 새순을 채취해 나물로 먹으면 봄 향기가 상큼하다. 취 잎을 한 움큼 얻을 수 있고, 고사리와 고비도 제법 꺾을 만하다.
이들 봄 먹거리는 자연이 지어주는 농사다. 그저 수확만 하면 된다. 이거야 말로 자연농법이요, 태평농법이 아니겠는가! 민들레는 왕고들빼기와 함께 양념을 넣고 버무려 김치를 만들어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한 민들레는 꽃과 줄기, 뿌리를 건조해 덖은 후에 차를 내어 마셔도 좋다.
■4월의 농사
3월 하순에 시작된 농사일은 4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는 각 농작물의 파종기가 4월에 집중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콩, 옥수수, 수수, 땅콩 등 하나하나 밭을 마련하고 씨앗을 심는다. 이후 작물 하나하나에 마음을 두고 돌봐주어야 한다. 이 때 밭에는 풀이 먼저 자리니 풀과의 힘겨운 전쟁도 치러야 한다.
강원 산골에 사는 필자는 4월초를 전후해 밭을 갈고 일부 밭에는 비닐멀칭(mulching·바닥덮기)을 한다. 이 때 유의할 점은 비가 내려도 고랑에 물이 고이지 않고 배수가 원활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비닐멀칭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배수불량으로 인한 습기 피해이기 때문이다.
북쪽 산간지역이기에 감자와 옥수수는 좀 늦은 4월 10~20일 심는다. 감자는 씨감자를 사서 크기에 따라 개당 2~4쪽으로 잘라 하나씩 심는다. 씨감자 자를 때는 정아부(씨눈이 많이 모여 있는 곳)를 중심으로 절단하는 게 요령이다.
씨감자 |
옥수수는 씨앗을 하나씩 파종한다. 대개 초보 농사꾼의 경우 밀식재배를 한다. 일정한 면적에 많이 심어 많이 거두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밀식재배를 하면 줄기가 제대로 크지 못하고 열매도 잘다. 조금 여유 있게 간격을 두고 심는 게 좋다. 옥수수는 보름간격으로 시기를 조절해 순차적으로 심으면 추석 이후 늦가을 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옥수수는 파종한 뒤 보름 정도 지나면 싹이 올라온다.
4월에는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운 때여서 강풍으로 인해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는 피해를 입기도 하고, 고온 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에 막대한 해를 입히기도 한다. 또 황사가 날아와 산천을 온통 누런 먼지로 뒤덮기도 한다. 또한 벼, 콩, 옥수수 등 열매 작물은 더운 여름 기운을 받고 자라는데, 서리에 약해서 어린 싹이 서리를 맞으면 오그라든다. 그래서 서리가 사라진 뒤 싹이 돋아나게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농사는 어찌 보면 ‘타이밍의 예술’이다. 비오기 전에 한발 앞서 김매고 씨 뿌리면, 농작물이 알아서 쑥쑥 자란다. 사람이 심고 하늘이 비를 내린다. 이럴 때 농사는 자연이 짓는 것이고, 사람은 단지 자기 몫을 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농사는 자연에 순응할 때 심은 만큼 거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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