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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아이와 함께 5년…이젠 엄마 과학자”
경단녀 벽허문 KIST 김정선 연구원
정부 ‘경력복귀 지원사업’ 혜택
일 · 육아 병행 요령 터득하는 중


“엔지니어는 ‘금녀의 벽’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벽은 넘었는데 출산ㆍ육아라는 또다른 벽은 넘을 수가 없었어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정선 연구원(37·사진)은 요즘 말로 ‘경단녀(경력단절 여성의 줄임말)’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대학 졸업 후 한국기술표준원에 다니다가 2003년 대기업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런데 임신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 둔 후 꼬박 5년은 육아에만 전념하며 경력이 ‘단절’됐다.

그는 “회사 내 핵심부문에서 일하고 싶어 포토공정 분야를 자원했지만, 독한 약품에 둘러싸여 뱃속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고 했다. 당시는 육아휴직을 하는 여직원들도 거의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지만, 아이를 위해 퇴사해야 했다.

출산 후에도 재입사의 길은 요원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제천으로 이동했다.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는 “언젠가 다시 일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시간이 흐를 수록 기회가 영영 찾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던 김씨에게 길이 열렸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시행하는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지원사업’덕분이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도시에너지시스템연구단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전직 엔지니어였던 그는 이곳에서 ‘고분자 제습재료’부문을 연구개발하는 ‘과학자’가 됐다.

이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도 조금은 요령이 생겼다. 직장에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는 퇴근 전에 반드시 끝내고, 연구성과 등은 집에서 밤늦게까지 읽어낸다. 빠르게 변화한 과학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자체 야근’을 수시로 하고 있다. 저녁 회식은 3주 전 미리 날짜를 잡고 아이를 친정집에 맡겨둔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아들의 울음이 가슴 아프지만, 훗날을 위해 아이와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그는 직장 여성, 특히 연구의 연속성이 중요한 과학기술인들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가 병행될 수 있는 직장환경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최근 육아휴직이 확대되고, 직장어린이집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 과학기술인을 채용하는 공공기관이나 회사에 보조금을 주는 ‘경력복귀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업 혜택을 본 여성과학기술인이 100여명에 불과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과학기술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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