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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미술관 ‘키친’ 전…20세기 부엌의 추억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현대인에게 부엌은 삶 속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부엌에 얽힌 크고 작은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부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난 20세기 부엌디자인의 변천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사간동의 금호미술관(관장 박강자)에서 개막됐다. 금호미술관의 ‘키친-20세기 부엌과 디자인’전은 1920년대 제작된 ‘프랑크푸르트 키친’에서부터 1990년대 불탑(Bulthaup)사의 ‘시스템20’까지 부엌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서양의 오리지날 부엌 13점이 소개됐다. 또 현대의 시스템 키친도 설치돼 지난 100년간 주방디자인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다.

샤를롯 페리앙이 디자인한 ‘유니테 다비타시옹 부엌’. 기능 뿐 아니라, 마치 추상화처럼 아름다운 면 분할을 꾀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요즘 우리는 싱크대와 조리대, 수납장이 매끈하게 이어진 부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엌은 거실 한켠에 옹색하게 놓인 ‘가구’에 불과했다. 부엌이 독립된 구성을 보이게 된 것은 1926년 ‘프랑크푸르트 키친’이 등장하면서다. 현대 부엌의 ‘효시’로 불리는 이를 설계한 이는 오스트리아의 여성건축가 쉬테-리호츠키였다. 이 여성은 1920년대 프랑크푸르트에 지어진 신축주택을 위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주방설비의 표춘화를 갖춘 주방을 선보였다. 6.5㎡라는 작은 공간에 모든 걸 갖춘 일체형 부엌은 짧은 동선으로 가사노동의 효율을 제고할 수 있다. 또 청소할 필요가 없도록 수납장을 천장과 바닥에 붙여버린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였다.

디테일 또한 놀랍다. 냄비 건조대는 바닥을 살짝 기울여 물기가 빠지게 했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양념통에는 내용물의 이름과 눈금이 표시돼 있다. 싱크대 겉면은 ‘파리가 가장 싫어하는 색’을 연구해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칠해졌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한 합리적인 디자인이다.

1926년 설계된 ‘프랑크푸르트 부엌’. 독일의 공영주택용 부엌으로 디자인된 일체형 부엌으로, ‘현대부엌의 효시’다. [사진제공=금호미술관]

1930년대 위생과 청결을 실현시킨 주방가구를 선보였던 포겐폴이 1950년대에 디자인한 ‘포겐폴 부엌’은 가로 60cm로 규격화한 흰색의 캐비넷 큐브를 자유롭게 배열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모듈시스템이다. 빛깔도 한결 경쾌해졌고, 인간공학도 고려되기 시작했다.

파리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했던 레이몬드 로위의 1950년대 ‘룩 키친’은 부엌 디자인에 유선형이 적용된 첫 사례다. 부드럽게 둥글린 모서리, 이음새 없는 매끄러운 실루엣과 광택이 특징이다. 이어 1960∼70년대에는 수납공간 배열에 신경을 쓴 부엌이, 1980∼90년대에는 효율성과 위생을 강조한 세련된 부엌이 주류를 이뤘다. 

주방용품 브랜드 알레시의 물주전자. [사진제공 금호미술관

미술관 측은 조형미를 살린 이색 부엌코너도 조성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조에 콜롬보가 1963년 디자인한 ‘미니-키친’은 바퀴가 달려 어디든 이동가능한 부엌이다. 사각의 큐브 속에 소형 냉장고와 전기 버너, 찬장이 포함돼 있다. 1983년에 등장한 ‘키친 트리’(슈테판 베베르카)는 마치 나무기둥처럼 디자인된 부엌이다. 철기둥을 중심으로 싱크대와 레인지, 조리대가 나뭇가지처럼 달려 독특한 미감을 뿜어낸다. 이번 전시에는 쓰임새 높고, 디자인도 유려한 그릇·도구·가전 등 주방용품 400여 점도 출품됐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옥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독일및 미국 등지에서 수집한 오리지널 부엌을 중심으로,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부엌및 용품을 시대별로 전시했다”며 “주택 건축의 변화를 쫓아, 실용에 조형미를 더한 각 시대의 실험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6월29일까지.

퐁듀 포트. 옌스 크비스트고르의 작품. [사진제공 금호미술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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