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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대책 1년…“‘大빚민국’ 의 지속 불가능한 주택정책”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 지난달 27일 저녁, 전문건설회관. ‘집값 바닥론, 그리고 집 잘 구하는 법’을 주제로 강연이 진행 중이었다. 자비를 들여 참석한 청중은 500석 규모 대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강연자는 부동산시장의 ‘독립전문가’로 불리는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이었다. 2012년 7월 출범한 그의 연구소는 광고료로 운영되지 않는다. 대신 시민 후원금 비중이 적잖다.

선 소장이 물었다.

“주변에 빚 안 낀 주택보유자가 많으신가요?”

두 명이 손을 들었다. 그가 다시 질문했다.

“그럼 주변에 대출 낀 주택보유자가 많으신 분 손 들어주세요”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들었다. 어림잡아 절반은 확실히 넘었다. 기자 옆에 앉은 한 중년의 청중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大)빚민국이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박근혜 정부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4.1대책)’을 발표한지 1년이 지났다. 선 소장은 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대책이 “세금 내려줄테니 빚 내서 집 사라는 것”이라며 “지속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작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전국 모든 가구가 평균 5818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경상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LTI) 250%초과 부채위험가구는 ‘고위험군’ 39만가구를 포함, 135만가구다. 정부는 통제가능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계 빚 총량은 지금도 늘고 있다.

현 주택정책에 대한 그의 분석과 진단을 문답식으로 풀어봤다.

▶ 정부의 주택정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 빚 내서 집 사라는 게 주택정책의 골자같다. 당장은 떨어지는 집값 잡고 부동산 시장 침몰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ㆍ건설업계 입장이라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한국경제가 가야 할 건전한 방향는 정반대 행보다. 지금 정부는 집값을 떠받치는 수단으로 가계 대출을 동원하고 있다. 공기업 부채감축 등 일련의 행보를 볼 때 과거 정부가 즐겨 쓴 재정수단은 사실상 소진됐다. 결국 가계는 집 사느라 부채 총량만 늘리고 있는 꼴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100으로 본 금융부채 비율은 올해 174다. 2017년예측치는 184다.

▶ 정부가 올 초 국토연구원의 1월 기준 분석을 토대로 4.1대책의 효과를 발표했다. 작년 4 ∼12월 주택거래량은 11만호가량 증가, 집값은 1.8%p 올랐다. 이는 경제성장률 0.13%p, 건설투자 0.44%p, 민간소비 0.22%p 상승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 실제 분기별 GDP성장률을 보면 건설투자가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지속 가능할까. 일시적으로 가계 빚을 늘려 집을 사게 하고, 그만큼 집을 더 지으면 건설투자가 회복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착시효과다. 기본적으로 부채는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다. 부양책은 앞으로 더 많은 빚을 부른다. 향후 더 큰 부담이 된다. 이런 식으로 떠받쳐진 집값 등을 바람직하다고 포장하는 건 뭔가 잘못됐다.

민간소비도 그렇다. 다른 품목 물가는 대체로 떨어지는데 주거비용은 올랐다. 서민에게 주거비는 전ㆍ월셋값 아닌가. 기본적으로 전셋값은 집값에 따라 정해진다. 집값이 안 떨어지면 전세가 내릴 수 없는 구조다. 이렇듯 주거비 과부담 때문에 민간소비가 늘어났다면 진정한 의미의 소비회복일까. 현재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전국 부동산 구매력 총량지수는 2000년을 100으로 볼 때 올해 85.95다. 2020년엔 67, 2030년엔 24.4로 크게 내려갈 것이다.


정부는 시민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관점에선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지표를 표면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강하다.

▶ 전국 전셋값은 82주 넘게 상승 중이다. 정부는 전세를 안 잡는걸까 못 잡는걸까 = 안 잡고 있는 쪽에 가깝다. 빚 내서 집 사란 건 집값을 ‘안 내려가게’ 하겠단 신호다. 그런데 매맷값이 자동적으로 반영된 전셋값이 내려갈 수 있을까.

정부의 무리한 집값 떠받치기가 지금의 전세난을 악화시킨 측면이 크다. 집값이 시장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내려가면 손바뀜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부실주택이 시장에 ‘안전한(빚 안 낀) 전세’ 형태로 다시 나올 계기가 생긴다. 그런데 정부는 지속적으로 부양책을 쓰고 있다.

다주택자들은 최대한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 주택처분을 미루고 있다. 그리고 다주택 소유자들이 투자(또는 투기)실패를 만회하고 대출이자 부담을 덜 갖도록 전세→월세 전환이나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행태를 방조하고 있다. 집 가진 자의 손실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전세난은 단순히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수급 미스매치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수요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빚이 없는 ’안전한 전세‘다. 이 물량이 극히 부족하다. 


실제 경기 파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933가구 중 빚 없는 가구는 17.4%에 불과하다. 대출액은 평균 3억267만원이다. 대출과 담보액을 합쳐 집값 100%를 넘긴 가구가 전체 60.7%다. 이는 현재 시세로 집이 팔려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일부 또는 전부 떼일 ‘깡통전세’다. 한 군데 사례가 아니다. 수도권 전세 물량의 최소 50% 가량은 엄밀한 의미에서 ‘안전한 전세’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안전한 전세가 품귀현상을 일으켰다. 이 물량들의 가격이 올라 블루칩처럼 전셋값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특히 안전한 전세는 수도권 버블세븐 지역처럼 투기가 심했던 곳일수록 더 부족하다.

▶ 결국 ‘집값 떠받치기’는 주택시장의 각종 규제 완화와도 관련 깊다 = 규제도 결국은 서민경제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완화해야 한다. 무조건 철폐가 능사는 아니다.

대표적인 게 분양가 상한제다. 일각에선 한국에만 있는 부당한 제도라고 말한다. 분양가 상한제가 왜 나왔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先)분양제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나온 제도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의 전제는 후(後)분양제다. 사실 후분양제는 IMF 외환위기 전 분양가 자율화와 패키지로 마련됐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오면서 분양가만 풀어주고 선분양제는 그대로 뒀다. 비싸진 분양가는 2000년대 집값 폭등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다 뒤늦게 노무현 정부 말기에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도입한 것이다.

사람이 평생 구매하는 물건 중 가장 비싼 ‘집’을 모델하우스나 조감도만 보고 사게 하는 나라가 어디있나. 이러니 부실시공 문제가 끊임없이 나온다. 게다가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을 개발계획을 얹어 집 사게 만들고 입주한 뒤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세금문제도 그렇다. 양도소득세 중과제 폐지, 취득세 영구감면 등 거래세를 낮추려면 대신 보유세(재산세 + 종합부동산세)와 임대소득세 같은 불로소득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보유세 실효세율은 과표기준으로 봐도 0.3%가 채 안된다. 선진국 대비 30∼40% 수준이다.

▶ 그렇다면 향후 주택정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 정부는 어떻게든 부동산 시장을 떠받쳐야 한다는 논리로 일관해 왔다. 근본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시장 거품을 빼야 한다. 일종의 견착륙(firm landing)전략이다.

먼저 부실부동산을 정리하겠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빚 내서 집 사라는 대책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할 뿐이다. 많은 하우스푸어들이 정부 부양책 기대감으로 부실주택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DTI(총 부채 상환율)ㆍLTV 등 주택대출 규제도 단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에 대해 사실상 DTI규제를 없앴다. 지금도 서울지역 DTI는 50%다. 서울 외 수도권은 60%다. 연 소득의 절반 이상을 대출원리금으로 부담하는 것도 과하다. 이마저 완화하겠다는 게 현 정부다. 이는 도저히 정상적 대출대상이 아닌 이에게 ‘약탈적 대출 (금융업체가 주로 저소득층 대상으로 과다대출 유도하는 관행을 포괄적으로 이른 말)’을 독려하는 꼴이다.

대출규제를 강화하면 고(高)부채 가구들은 서서히 주택을 손절매하기 시작한다. 이 단계를 거치치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거품이 빠졌을 때라야 부양책을 써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구체적 부양 대상과 방법도 중요하다. 미분양 매입처럼 문제 건설사나 금융기관에 보상하는 방식은 안 된다. 저소득층과 무주택 서민에게 튼튼한 복지그물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충격을 줄여야 한다.

궁극적으론 공공임대의 대폭확대가 필요하다. 2011년말 기준 공공임대 재고는 전체주택의 5%로 OECD평균(11.5%)의 절반 이하다. 재원부족분은 국민연금 활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 자산규모는 2012년말 기준 353조원에 이른다. 이 중 70%가량인 255조원을 채권에 투자해 3%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같은 돈으로 공영개발 방식의 공공임대사업을 벌일 경우 민간보다 저렴한 임대료를 책정하고도 채권수익률 이상(4∼5%대)의 수익이 가능하다. 우선 3∼4개 단지에서 사업을 벌인 뒤 이 수익으로 향후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쓴다면 자금이 무한정 들지도 않는다. 국민연금 취지에 맞으면서도(노후 주거 생활 보장) 연금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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