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그린리빙 피플] “밥보다 사람대접…그래서 최고의 밥상”
11번째 생일맞은 인천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가 말하는 공감 · 연대의 삶
단돈 300만원 들고 3평 남짓한 공간서 시작
돈한푼 안 남지만…공부방 · 도서관 등 확장세
대가 없는 나눔…노숙인 향한 편견부터 버려야
독서장려금 3000원, 잊었던 대화 이어주는 다리


봄을 담은 된장국에 김치, 장아찌, 상추쌈, 생선구이, 나물 반찬 그리고 하얀 쌀밥이 가득 담긴 밥상. 후식으로는 빨간 사과 한 알이 전부인 밥상. 단출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상다리가 휘어질, 정승 판서가 먹는 밥상이 부럽지 않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거리에 몸을 누이는 노숙인에겐 정말 그렇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자리한 민들레국수집은 ‘만우절’인 1일 11번째 생일을 맞았다. 만우절에 문을 연 국수집은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역동의 세월을 보냈다.

일단 이름부터가 모순이다. 국수집이지만 국수가 아닌 밥을 내놓는다. 며칠씩 끼니를 거른 노숙인은 국수로는 주린 배를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숙인을 위한 밥상을 내놓은 일을 마다않는 이가 서영남(59) 민들레국수집 대표다. 그는 이곳을 찾는 노숙인을 ‘VIP 손님’이라고 부른다. 차가운 거절과 멸시에 익숙한 노숙인은 이곳에서만큼은 가장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다.

겉모습은 식당이지만 국수집은 돈을 받지 않는다. 무료급식소 티를 내지 않아야 VIP 손님도 눈치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간판도 달았다. 낡은 흰 간판에 노란 글씨로 쓰인 간판은 보일락 말락 수줍게 위치하고 있다.

노숙인에게 단순한 ‘밥 대접’이 아닌 ‘사람 대접’을 하겠다는 서 대표의 철학도 이곳에는 여기저기 깃들여져 있다.

▶‘민들레 수사’서영남=서 대표는 국수집 주인장이 되기 전 가톨릭 수사로 살았다. 1954년 부산 범내골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고, 1976년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했다. 1985년엔 종신서원을 하고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졸업했다. 기도와 육체노동으로 청빈을 실천하는 수도원 생활은 맑고 순했다. 하지만 그는 세속과 담 쌓지 않고 끊임없이 낮은 곳을 지향했다.

2000년엔 25년의 수사생활을 마감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환속을 결심했다. 출소자 공동체인 ‘겨자씨의 집’을 만들어 형제들과 함께하고 2003년 민들레국수집을 차렸다. “단돈 300만원 들고 시작했어요. 3평도 안 되는 공간에 6인용 식탁 하나, 20㎏ 국수 여섯 상자로 시작했죠.”

정부 지원이 없어 어려웠지만, 그러나 부자들의 생색내기 기부는 단칼에 거절했다.

“욕심을 버리고 작은 일을 하면서 사람을 ‘사람’ 대접하고 섬기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돼 있습니다. 또 노숙인을 하느님 대접하듯 모시면 대접받은 하느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죠. 걱정없이 살게 해주시죠.”

돈 한푼 남기지 않지만 그의 사업은 날로 확장세다. 민들레국수집은 11주년이 됐다.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꿈공부방은 6주년을 맞았다. 민들레꿈어린이밥집, 민들레책들레도서관, 노숙인에게 옷가지 등 물품을 지원하는 민들레가게, 건강을 살피는 민들레진료소는 각각 4주년을 맞았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는 5살이 됐고 어르신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은 첫 돌을 맞는다. 서 대표가 싹 틔운 희망은 그렇게 민들레 꽃씨처럼 아름답게 퍼져 나갔다.

그동안의 삶은 안락하고 넉넉했던 것은 아니었다. 쌀이 떨어질까 가슴 졸인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때마다 하느님의 손길이 다가왔다고 한다. “나누면 나눌수록 돼지고기, 고추장, 떡국떡 등등 이웃의 더 많은 사랑이 들어왔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살피는 세상이 됐으면…”=누군들 노숙인이 되고 싶어 노숙인이 됐을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를 헤매야 할까.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자본주의는 아귀다툼하듯 경쟁만 강요합니다. 이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선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질끈 눈을 감아버려야 하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도 공감하지 못하고 되레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 아닙니까.”

이곳 민들레식구인 김대성(53ㆍ가명) 씨는 고아원 출신으로 4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살았다. 2006년께 민들레식구가 됐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는 데, 기쁨도 잠시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과거 영등포역에서 생활할 당시 50만원을 받고 낯선 이에게 인감증명을 떼어주었는데 그게 4.5t 대포 트럭 구입에 쓰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을 보면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민들레식구는 싸움에 휘말려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고 도망다니다 스스로 파출소를 찾아가 벌금 낼 여력이 없으니 노역을 시켜달라 했다. 그는 그렇게 하루 5만원씩 120일을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다 출소했다. 이런 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민들레식구는 따뜻한 정으로 품에 안는다. 타인의 고통을 살피는 세상, 그런 세상을 묵묵히 실천하고 싶어서다.

된장국에 김치, 장아찌, 상추쌈, 생선구이, 나물 반찬, 하얀 쌀밥과 사과 한 알. 이 밥상의 주인은 거리를 헤매는 노숙인이다. 단출하지만, 그들에겐 정승 부럽지 않은 밥상이다. 만우절인 1일 11번째 생일을 맞은 인천의 ‘민들레국수집’에서 서영남 대표가 밥상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노숙인을 향한 사회적 편견 버려야”=그는 ‘노숙인을 왜 돕느냐’는 질문에 “천주교 신자니까 그렇다”고 답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초기 신앙을 가졌던 분들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구워 연명했는데, 100년 역사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없어요. 사회에선 굶어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죠. 교우촌 100년 역사에서 아사자가 없다는 건 돈보다도 귀한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민들레국수집을 만든 것도 이처럼 공감의 능력과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또 노숙인 역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노숙하는 분도 처음엔 나만 알고 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해요. 1등한 사람과 똑같죠. 하지만 그들에게 이웃을 만나게 해주고 이웃을 겪게 되면 돈보다 귀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통해 책 읽기 사업도 펼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책 한 권을 읽고서 독후감을 발표하면 독서 장려금으로 3000원을 노숙인에게 건넨다. 요즘은 하루 50~60명이 매일 독후감을 발표하기도 한다.

“노숙인은 말을 건네는 법을 잊어버려요. 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기 때문이죠. 언어의 상실은 소외된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이들이 책읽기와 발표를 통해서 말 건네는 훈련을 합니다. 말문이 트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혼자서만 사는 세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아낌없는 나눔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곳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자립에 성공해 떠났던 이들도 이곳에서 깨우친 삶의 행복이 그립다며 다시 민들레타운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숙인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남아있다. 인터뷰 도중 동네 어르신이 다가와 서 대표에게 말을 건다. “수사님, 저 젊은 것들 밥주지 마세요. 일도 안 하면서 밥만 축냅니다. 10년 동안 겪어봐서 아시잖습니까.”

서 대표가 가만히 웃으며 답한다.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 10년밖에 기다려주지 못했습니다.”

‘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 김남주 시인의 ‘사랑’이라는 시를 그는 몸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