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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불필요한 규제”…걷는 데 지장없는 자폐장애인에게 휠체어 규정?
-편의시설에 장애특성 고려않고 관련법규 일괄적용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관련 민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 보이는 규제보다 보이지 않는 규제가 많다는 얘기다. 물론 지나치게 개혁 수요가 커지면서 규제 아닌 규제나 꼭 필요한 규제에 대한 반감이 불필요하게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얼토당토않은 규제들이 음지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의 하나가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이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제2조 1항)에는 승강기와 리프트 설치.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 등 유도 또는 안내 설비를 반드시 갖추도록 하고 있다. 어떤 장애도 같은 조건이다. 바로 이게 문제다. 

사회적기업 래그랜느 작업장에서 남기철 대표(왼쪽)가 자폐성 장애인들과 쿠키와 빵을 만들고 있다. [헤럴드경제DB]

자폐성장애의 예가 그렇다. 이들은 등산도 가능할 정도로 거동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굳이 장애인 승강기나 리프트를 적용받고 점자블록이나 시각장애인 유도 및 안내 설비를 갖춰야만 한다. 자폐성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작업장을 지하에 세우겠다고 하면 일단 담당 공무원은 난색을 표한다.

올해 33살 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중소무역회사 남기철 대표. 소규모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사회공헌 일환으로 자폐성 장애인들을 위한 사단법인 밀알천사(http://www.miral1004.org)와 자폐성 장애인들의 사업장인 사회적기업 래그랜느(www.lesgraines.org)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남 대표는 원래 자신의 4층 건물 지하에 자폐성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을 희망했으나 시설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 대표는 자비로 지금의 작업장과 카페를 열어 장애 아들을 포함해 6명의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쿠키와 빵을 만들어 일반 손님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다. 남 대표는 “지금은 서울시 지정 사회적기업으로 인정을 받긴 했지만 처음부터 장애인표준사업장이 성사됐더라면 정부지원 규모도 훨씬 클 뿐더러 일반 기업과 고용연계도 이뤄져 최소한 60~80명 정도는 더 채용했을 것이고 제품 판로도 안정적으로 확보됐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더 있다. 관련 법률상 장애인복지시설의 종류별사업 및 설치, 운영 기준(제41조 및 제42조) 재활상담실, 집단상담실, 자원봉사실 등 부대시설이 반드시 갖추도록 하고 있다. 또 장애인 작업장을 설치하더라도 우선 자기 부담으로 10명 이상 장애인을 6~12개월 고용한 뒤 각 관할 기관으로부터 운영보조를 지원받도록 하고 있다.

남 대표는 “상식적으로 기본적인 사무실과 작업실, 그리고 위생시설을 갖춰 소규모로 운영한 뒤 점차적으로 증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데 법은 아예 초기투자 부담을 앞세워 사업을 가로막고 있다”며 “자폐성 장애인 사업장에 불필요한 엘리베이터나 리프트 등도 치명적인 사업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뜻을 접는 이들이 주변에 허다하다고 한다. 남 대표 역시 법적 현실에 부딪쳐 결국 사재를 털어서라도 수도권 인근에 자폐성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장과 복지시설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고 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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