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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명보, ‘히딩크 로드’ 완주의 조건
월드컵이 다가오면 우린 언제나 2002년의 붉은 여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는 한국 축구에 벅찬 성취감을 안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더 크고 강하게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당시 최고의 영웅은 누가 뭐래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그는 체력이 밑바탕된 전술과 묵직한 리더십으로 세계 축구의 변방 한국을 단박에 무대 중심으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그 이후 대표팀 감독들에게 히딩크는 선물이기보다는 ‘짐’이었다. 그 누구도 히딩크와의 비교를 피해갈 수 없었다. 피곤하고 불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부담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이끌 홍명보 대표팀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만 홍 감독에게 히딩크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희망’이다. 히딩크가 걸었던 길과 비슷한 행보를 함으로써 팬들은 그에게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 “히딩크 때도 그랬었지” 라는 한마디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돌려 놓을 수 있는 매우 힘있는 무기다. 


히딩크 감독은 출발이 좋지 못했다. 2001년 5월 프랑스와 컨페더레이션스컵, 그해 8월 체코와 친선경기서 잇따라 0-5로 완패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그 유명한 ‘오대영’이다. 선수 선발 문제도 시끄러웠다. 히딩크는 학연으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의 보이지 않는 손을 과감히 뿌리쳤다. 자신이 직접 보고 인정한 선수만 발탁했다. 박지성이 처음 뽑혔을 때 많은 축구인들은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당시만 해도 박지성은 왜소한 체구에 성장 가능성도 높지 않은 ‘비주류’ 선수였다. 하지만 박지성은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공 스토리를 썼다.

홍명보 감독의 길도 비슷하다. 홍명보호는 지난 1월 멕시코와 평가전서 0-4로 완패하며 월드컵 해 첫걸음을 불안하게 내디뎠다. 선수 선발에 대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중심엔 박주영이 있었다. 홍 감독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소속팀에서 존재감 없던 박주영을 발탁했다. 2002년의 박지성처럼, 비난 일색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박주영 자신이었다. 대표팀 복귀전이었던 지난 6일 그리스전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홍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홍명보호의 상황은 12년 전 히딩크호와 닮은점이 많다. 다만 ‘아직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 사상 첫 16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 뒤에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말로 선수들을 자극하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한계를 미리 정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내도록 한 리더십은 한국 축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홍 감독이 풀어야 할 숙제도 같은 지점에 있다. 홍 감독이 맡기 전 대표팀은 유럽파와 국내파 간의 불화설로 큰 홍역을 앓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팀이 하나로 뭉쳐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건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볼 수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목표가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단단히 뭉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홍 감독이 보여줘야 할 리더십이다. ’히딩크 로드‘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환희를 안겨줬다. 석 달 뒤 홍명보 감독도 그런 기쁨을 줄 수 있을까. 2002년 신화의 주역인 홍 감독이라면 어쩌면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것같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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