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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지마식 학과 개설’ 봇물…대학의 ‘명패장사’
[헤럴드경제=박영훈ㆍ서지혜 기자]경영학과, 디지털 경영학과, 마케팅학과, 응용경영학과….

수도권에 위치한 A 대학이 개설한 경영학 계열 학과들이다. A대학은 학생 유치를 위해 선호도가 높은 경영학 유사 학과를 최근 몇년 사이 잇따라 개설했다.

하지만 정작 배우는 학생들은 실제 이들 학과들 간의 큰 차이는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재학생 K씨는 “학교가 그럴듯한 학과를 만들어 학생 유치 장사를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묻지마’식 학과(부) 개설이 잇따르고 있다. 학과 개설ㆍ폐지가 대학 자율이다 보니, 대학들마다 새로운 학과 신설을 난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마다 유사학과는 넘쳐난다. 특히 커리큘럼은 큰 차이 없이, 명패(학과 이름)만 바꾸는 사례도 다반사다. 대학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명함’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지방에 있는 B대학도 그런 경우다.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학과 명칭에 ‘글로벌’을 삽입해 신입생 모집에 나섰다. 학과가 바뀌면 이에 걸맞는 교수진이나 커리큘럼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지만, 기존 교수진에 커리큘럼도 몇몇 수업이 추가 됐을 뿐 기존 학과와 차별화된 것은 거의 없었다. 

대학 학과 수가 홍수시대를 이루고 있다. 교육의 다양성을 맞추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명패를 바꿔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홍보 전략이라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대학들 캠퍼스 전경로 이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헤럴드경제DB]

한상근 한국직업능력 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교육과정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실제 커리큘럼에는 기존 학과들과 차별화가 없는 신설 학과들이 너무 많다”며 “숫자만 늘어난 측면이 많아 학부모와 수험생들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난방식으로 대학마다 학과를 신설하다보니 국내 사립대는 해외 명문대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미국의 하버드대의 경우 단과대 5개(38개 학과)에 학부 재학생은 6700여명이지만, 국내 지방의 한 사립대는 18개 단과대(100개 학과)에 재학생만 2만3000여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수요와 공급의 역전현상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논리도 제공된다. 오는 2018년부터 대입 정원과 졸업생 수가 역전되기 시작해 2023년쯤엔 16만여명의 입학정원이 남아돌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학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에서 전체 학과 수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시대 흐름에 맞춤 인재육성’ 등의 이유를 내세워 신설했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폐지하는 반짝 학과도 줄을 잇고 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수 밖에 없다.

지난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탈냉전 분위기를 타고 대학들마다 앞다퉈 신설한 북한학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학문의 정체성이 불분명한데다가, 학생들의 진로 또한 불투명해 취업에서도 어려움을 겪자, 현재 대부분의 대학에서 문을 닫았고, 현재 2개 대학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벤처 육성정책과 맞물려 유행처럼 신설됐던 벤처 학과도 현재는 대부분 사라지거나 다른 이름으로 학과가 바뀌었다.

최근에는 시류를 타고 대학마다 엔터산업 관련 학과를 경쟁적으로 신설하고 있다.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TV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음악과 보컬 관련 학과를 설립한 학교만 전국 40여개 대학에 달한다. 이를 학과들 역시 유행이 시들해지면, 언제 폐과될지 모를 일이다.

시대에 변화에 맞춘 신산업분야가 학문으로 체계를 잡고, 전문화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시대의 인기에 편승, 학과를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국교육개발원 관계자는 “강도높은 학과 통폐합 등을 통해 정원 감축과 학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특히 새로운 학과 개설시, 대학들이 단기적인 이익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더라도 아깝지 않은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ar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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