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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 외면에…가습기 살균제 판결 난항
“교수들 바쁘다” 대형병원 3곳 신체감정 거부…소송 2년 돼가는데 1심선고 못내려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이 대형병원의 잇따른 신체감정 거부로 난항에 빠졌다. 이 때문에 소송이 제기된 지 2년이 다 돼가도록 1심 선고조차 내려지지 못해 피해자들의 고통도 커져가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소송은 모두 4건. 이 중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피해자 18명의 유족들과 생존 피해자 4명이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살균제 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 가장 심리가 많이 진행된 상태다.

지난 11일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 발표에서 이 소송의 원고 대다수는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소송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생존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피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쳤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당한 배상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신체가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 장해율을 따져야 해 병원의 감정이 필수적인데, 국내 대형병원들이 하나같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측은 지난해 5월 법원을 통해 서울대병원에 신체감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1주일여 만에 신체감정을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어 지난해 6월 신촌세브란스병원에도 신체감정을 요구했지만 병원은 넉 달을 끌다가 10월에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두 병원은 교수들이 바쁘다는 이유를 댔다.

피해자들은 마지막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신체감정을 요구했다. 아산병원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논문 등을 써내는 등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해온 곳이었다. 하지만 아산병원 역시 몇 개월을 끌다가 지난 1월 신체감정을 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의 일정 때문에 신체감정을 해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이 보낸 신체감정 촉탁이 거절당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법원에서 이뤄지는 손해배상 소송 중 신체에 피해가 간 소송은 대부분 신체감정을 거쳐서 판결이 난다.

‘신체감정의 제문제’라는 논문을 쓴 바 있는 양승국 변호사는 “신체감정을 거절하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이지만, 대형병원 3곳이 연달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판사는 “피해자들이 신체감정을 거절당한 시점에도, 법원은 세 병원으로부터 신체감정을 받아 다른 소송들의 심리를 진행해왔다”며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백창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커서 더 이상 소송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단 신체감정을 철회하고 항소심에서 청구취지를 확장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에 대한 임상경험이 가장 많은 병원들이 피해배상 규모를 결정할 감정을 회피한다면 피해자들의 소송이 더욱 불리해지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소송이 더 지연되지 않도록 의료기관의 신체감정 회피 태도를 시정하도록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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