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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김성진> 누가 그들을 살인자로 만드는가
누구를 죽여본 사람이 있는가.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사람을 죽이는 일은 끔찍한 범죄이며,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살인자가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참담한 노릇이다.

지난 16일 오후 경의선 운정역 인근에서 70대 노인이 철로에 앉아 스스로 달려오는 열차에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망자가 어떤 개인사정으로 세상을 등져야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버리면서, 아무 죄없는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사실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생활고로, 또 다양한 연유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고의적 자해 사망자(자살)는 28.1명이다. 자살 사망률은 1992년 8.3명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 18.4명으로 늘었고 2002년 17.9명, 2007년 24.8명에 이어 2011년 31.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2년에는 28.1명으로 약간 줄었다. 하지만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인구로 계산한 한국의 자살률은 29.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12.5명)의 2.3배에 달한다.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가입한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좀처럼 털어낼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비극적인 죽음의 행렬’은 그칠 줄을 모른다. 특히 최근 들어 비참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본인은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은 선진국에 턱없이 부실한 사회복지의 그늘 속에 살아보려고 애쓰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죽은 이들 못지않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열차, 지하철 등에 뛰어드는 자살자들이 만들어내는 ‘죄없는 살인자들’의 삶이다. 열차의 특성상 제동거리도 길고, 탑승객들의 안전을 고려해 급정거를 하기도 쉽지 않다. 기관사들은 목숨을 던지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는 끔찍한 고통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평생을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된다. 자신의 잘못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끔찍한 죽음의 목격자이자, 가해자가 되고만 이들 기관사는 혼자 힘으로 이를 견뎌내다 끝내 세상을 등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하는 사람을 치었던 기관사는 며칠간의 휴일을 받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공황장애에 빠지거나,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생업을 접고 정신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열차 투신자살을 막지 못하면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열차와 철로에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기관사들을 치유해줄 프로그램 정착이 시급하다.

김성진 사회팀장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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