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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분리독립 사례로 본 크림의 운명은?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16일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귀속 주민투표가 가결됐지만 크림반도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표면 상으로 병합 수순을 밟고 있지만 서방의 고강도 제재가 시작되면서 속내는 복잡하다. 서방의 제재 강화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경제가 곤두박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림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과거의 분리독립 분쟁 사례에서 힌트를 찾아봤다. 

▶‘실효지배’ 남오세티야=크림반도는 ‘2008년 조지아’와 닮은꼴이다. 친서방의 우크라이나를 조지아에, 친러의 크림반도를 남오세티야에 대입하면 평행이론이 성립된다. 다른 점은 크림반도에선 교전이 이뤄지지 않은 반면 조지아는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렀다는 것이다.

2008년 8월 발발한 조지아 분쟁은 원래 조지아와 친러시아계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 사이의 싸움이었지만 여기에 러시아가 남오세티야 편을 들면서 서방 대 러시아 갈등으로 확전됐다.

조지아는 2008년 8월 친러시아계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분리 움직임을 보이자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 명분으로 남오세티야로 진격했고 남오세티야에서 조지아 군 축출에 만족하지 않고 조지아 본토를 침공해 초토화시켰다.

조지아는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지 5일만에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지만, 러시아는 실질적인 군사행동을 지속하며 서방의 비난을 받았다. 미국이 조지아 사태에 개입할 뜻을 선언하며 서방 대 러시아간 일촉즉발 사태로 치달았지만 러시아가 프랑스가 제시한 최종 평화안에 서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전쟁 종료 직후 독립을 선포했다. 러시아는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고 경제적 지원과 함께 치안유지 명목으로 자국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그러나 조지아와 서방 국가들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을 용인하지 않고 있어 지역 안보의 불씨로 남아있다.

크림반도 역시 남오세티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서방이 크림의 러시아 귀속을 불법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면 러시아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91년 소련붕괴 이후 러시아가 영토병합을 한 사례가 없다”며 “관련 법안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고고 꼬집었다. 또 “러시아가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경제 지원한 적 있지만, 두 지역 인구가 총 30만명이었던 것과 달리 크림반도 인구는 230만명이 넘는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러테러’ 체첸=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체첸자치공화국은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이슬람 반군의 근거지다.

체첸과 러시아간 싸움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첸은 1991년 소련 붕괴 혼란기를 틈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1994년 러시아가 체첸에 전면 공격하면서 다시 러시아에 편입됐다(1차 체첸사태). 그러나 체첸인들은 캅카스 산지로 후퇴해 집요한 게릴라전을 펼쳤고, 1996년 8월에는 수도 그로즈니를 수복하고 러시아군을 축출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체첸 반군의 폭탄 테러가 거듭되자 러시아는 체첸에 다시 진입해 2차 체첸사태가 촉발됐다. 2000년 2월 러시아군이 그로즈니를 다시 점령했고 체첸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2003년 3월 체첸공화국 주민투표를 실시해 체첸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해주는 대신 체첸이 러시아 연방의 일부임을 재확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헌법을 승인했다. 그러나 체첸반군의 러시아 테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크림반도가 ‘제2 체첸’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럴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소수민족인 타타르계가 크림을 사실상 점령한 러시아를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의회의 타타르계 의원인 무스타파 제밀레프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타타르족 무장단체들은 명예를 위해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아전인수’ 코소보=코소보 사태는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이 크림반도와 정반대 상황이다.

 코소보 자치주를 놓고 서방은 세르비아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는 세르비아 주권 침해라는 이유로 아직까지 코소보의 독립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코소보 사태는 1998년 3월초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구유고연방의 세르비아 내 자치구였던 코소보는 알바니아계가 전 인구의 80%로, 세르비아 중앙정부의 인종차별에 반발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 1998년 5월 비상사태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에 인종청소를 벌였다.

반인륜적 코소보 참사에 국제사회는 개입을 선언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1999년 3월 나토의 유고연방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코소보 사태는 11주간 계속된 나토 공습 끝에 같은해 6월 세르비아가 유엔의 평화 계획에 승인하면서 종결됐다.

크림반도의 상황을 코소보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에 대한 인종청소로 정당성을 잃은 반면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계에 대한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의 탄압은 없었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했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나토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일부 의원들이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코소보 사태는 ‘상황논리’에 따라 서방과 러시아가 얼마나 다른 입장을 보이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치 상황이 민족자결권과 영토보전권에 대한 수백년된 논란을 재점화했다”고 지적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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