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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자크군이 크림반도에 나타난 이유는…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 주민투표가 95%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가운데, 양모로 만든 두툼한 털모자를 쓴 군대가 투표직전 수도 심페로폴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자크(Cossacks) 혹은 코사크로 알려진 이들은 수세기 동안 러시아 국경을 지켜온 용맹한 군대다. 털모자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 통 넓은 코트에 소총을 어깨에 메고 평원에서 말을 달렸던 이들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터질듯한 화약고, 크림반도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카자크, 크림반도 입성…이들의 역할은=지난 10일(현지시간)엔 150명의 카자크군 장교들이 심페로폴 중앙광장에 열을 지어 모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치안유지를 담당하며 친(親) 러시아 세력을 도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이들이 크림 자치공화국의 러시아 귀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로 몸을 피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크림반도가 긴장상태에 직면하자 이곳의 카자크 민병대는 친러세력 본부를 지키고 고속도로에 검문소를 세우는가 하면 채찍을 들고 거리를 순찰하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승인해 편성된 러시아 내 카자크 정규군의 지원을 받았다.

러시아 카자크 정규군 일부도 러시아로 들어왔다. 러시아 쿠반 카자크군 니콜라이 페르바코프 부사령관은 타임에 “카자크는 국경이 없다”며 “수천 명의 카자크군이 러시아 정부 승인을 받아 러시아에서 크림반도로 진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러시아 남부도시 크라스노다르에 주둔중이었다.

그는 크림반도 동지들을 만나 동포애를 강조하며 “우리는 통일된 민족이고 같은 신념과 전통,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타임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여러 집단으로 분리돼 있지만 그리스 정교라는 종교적 유대와 종교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이 이들을 하나로 만든다고 분석했다.

이날 크림지역 카자크군을 이끈 블라디미르 체르카신은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는 계획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아르메니아 카자크들이 칼리슈니코프 등으로 무장하고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전략적 도구, 이들의 슬픈 역사=러시아는 크림반도 편입을 위해 카자크의 유대관계를 빌미삼아 러시아 카자크 정규군을 크림반도로 진출시킴으로써 이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했다는 분석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크림반도 카자크 집단은 사병모집 및 훈련 등을 해왔고 분리주의를 지지했다. 이는 모두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돼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사를 받아왔고 크림 카자크는 친서방파와 친러파 정부 모두에게서 항상 불신의 대상이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밖 카자크들의 대우는 크게 달랐다. 지난 2005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카자크의 복무에 관한 법’을 제정해 국가가 민병대 조직을 승인하기도 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받았다. 법안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최고사령관 지위에 있다. 카자크군의 위계조직은 크렘린 카자크 위원회를 통해 승인된다.

법안을 통해 카자크는 러시아에서 약 60만 명의 군 조직을 인정받고 국경지대 방어, 삼림 지대 경비, 군 인재 양성, 대테러 임무, 지방 정부청사 경비 등을 포함한 국가가 요구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법안은 이들의 임무를 ‘사회 질서 유지’란 모호한 문구로 정의할 뿐이다.

카자크는 지난달 막을 내린 소치 올림픽에서도 등장했다. 역시 러시아의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됐다. 공항, 경기장, 시내 경비에 동원됐고 투입된 병력은 대략 5만 명 가량이었다. 카자크 장교 블라디미르 다비도프는 당시 타임에 “올림픽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고 전했다.

‘자유인’이란 어원을 가진 이름과 달리 역사적으로 카자크는 권력에 이용당하는 군사적 도구였다. 16~17세기 러시아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은 타타르와 투르크 침공 위협에 자금, 무기, 탄약, 식량을 제공하며 대신 국경을 방어하게 했고 2차세계대전때는 독소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다.

주변국들의 회유와 탄압의 역사를 지닌 카자크는 17세기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려 하기도 해 반 폴란드 독립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또한 18세기 러시아의 농노제 확산에 신분과 토지의 자유를 외치며 푸가초프의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ygmoon@heraldcorp.com



☞카자크족(Kazak or Cossack)=터키어의 자유인을 뜻하는 말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15세기 경 러시아 중부에서 남방 변경지대로 이주한 농민집단으로 자치 군사공동체를 형성했고 후에 러시아의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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