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멈춰선 시간, 청계천의 기억.. 제이 안의 사진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셔터 아래로 녹슨 쇠사슬이 내장처럼 쏟아졌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절대 보여주지 않을 듯한 굳건한 셔터가 살짝 열리자, 속내는 그렇게 힘없이 드러나 버렸다. 곧 사라질 공간. 청계천 공구상의 이름모를 골목 풍경이다.

골목길만 찍은 사진을 한자리에 모았다. 작가는 인간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골목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진작가 제이 안(안정희ㆍ한국여성사진가협회장)의 작품이다.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그가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며 뉴욕과 유럽 대도시를 독특한 컬러와 조형감각으로 담아온 작가의 눈은 이제 서울, 그것도 다 낡고, 헤지고, 스러진 청계천 공구골목으로 향했다. 화려한 도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세공장들의 클러스터는 외로운 섬 처럼 쓸쓸하고 멜랑콜리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작업은 주로 일요일에 이루어졌다. 주중에는 두드리고, 주무르고, 이어붙이는 생업의 활달함이 있지만, 갑자기 빈 공간으로 바뀌는 휴일의 고즈넉함과 쓸쓸함이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방이 조용해졌을 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는 묵은 세월의 색상이 있다”며 꼬박 4년간 청계천 골목을 누볐다.

좁은 골목, 낮은 지붕,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와 붉게 녹슨 쇠기둥, 맞춤법이 틀린 광고문구, 얽히고 설킨 전선줄… 한마디로 더럽고 낡은 공간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과도 같은 뒷골목은 작가의 독특한 색감을 만나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도심 재개발로 이제 사라질 이곳을 왜 담아낸 것일까. “세월의 색은 흉내낼 수 없다.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기록해 놓고 싶었다. 나라도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낡고 먼지 쓴 공간에 숨은 서울의 역사는 이렇게 작가의 손에 다시 생명을 얻었다. 

전시 관람 후 여유가 된다면 도록을 들고 청계천 공구상 곳곳을 다녀보길 권한다. 미처 보지 못했던 세월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게다.
vicky@heraldcorp.com

**사진설명
Frozen in Time 17, 잉크젯 프린트, 180×120㎝, 청계천, 2013. [사진제공=제이 안]
Frozen in Time 01, 잉크젯 프린트, 220×330㎝, 청계천, 2011. [사진제공=제이 안]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