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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윤이상의 음악
조덕현 아트클럽1563서 ‘音의 정원’ 전
미술가 조덕현(이화여대 교수)은 어느 날 윤이상(1917~95)의 글을 읽다가 전율을 일으켰다.

“인간은 땅에, 땅은 하늘에, 그리고 하늘은 ‘도’에 종속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너무 짧은 인생을 살며, 너무 무기력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커다란 언어에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겁니다(윤이상/철학/1993.5.17).”

이후 조덕현은 윤이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서양 주류음악사에 고유한 음악관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경남 산청과 통영으로 예술기행을 떠난 그는 윤이상의 육필악보에서 ‘수묵과도 같은 작은 이미지들’이 살아 꿈틀댐을 느꼈다. 그리곤 ‘음(音)의 정원’이라는 설치작업의 밑그림을 그렸고, 마침내 지난 7일 이를 선보였다.

조덕현은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기획사무소 SUUM(대표 이지윤)이 서울 서초동에 설립한 아트클럽1563의 초대로 개인전을 꾸몄다. 작가는 윤이상의 고향에서 가져온 마른 풀과 나무를 전시장에 13m, 높이 4m, 깊이 5m로 심었다. 그리곤 전면에 뽀얀 막을 드리우고, 빛과 바람을 곁들였다. 윤이상이 음악을 통해 구현했던 농담(濃淡)과 정중동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윤이상과 드뷔시의 음악을 교차로 편집해 들려주고 있다.

부드럽고 작은 오브제, 그리고 빛과 그림자로써 연출하는 공감각의 풍경을 만든 작가는 시각적 충격으로 가득찬 여타 설치작업과는 달리, 많은 것을 비워냈다. 대신 음악으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새롭고 낯선 정서를 유발하고 있다. 조덕현은 젊은 음악학도(전진희)를 카운터파트로, 윤이상과 현대음악에 대해 묻고 대화하면서 전시공간과 공연공간이 중첩된 듯한 색다른 전시를 꾸민 것.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설치작업 ‘음의 정원’ 앞에서 관객과 대화 중인 작가 조덕현(왼쪽). [사진제공=아트클럽1563]

이렇듯 현대미술의 장에 현대음악을 초대함으로써 작가는 우리에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상행위가 어떻게 공명하고,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확인케 하고 있다. 바람결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억새와 고사목 잎새가 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우는 정경을 보며, 귀로는 윤이상과 드뷔시의 음악을 듣다 보면 아련한 꿈의 동산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땅에서 온 인간이, 하늘을 꿈꾸다가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임도 느끼게 된다.

조덕현은 “윤이상은 선적이며 유동하는 진행 속에서 음과 음량의 농담효과를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게 했다. 이번 내 작업은 윤이상 예술의 시원(始原)을 이해하고, 공유하며, 수평적으로 조우하려 한 것”이라며 “식물과 오브제가 드리우는 거대한 이미지들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구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덕현의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통섭형 작업은 음향의 공간성과 구체성, 빛과 어두움, 상상적인 접근과 멀어짐, 정지 속 움직임을 음미하면서, ‘서정(敍情)의 정원’을 거닐어보는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5월 17일까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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